K팝보다 먼저 온 'K'

3부 | 경계 너머,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순간

by 그루 햇살나무

K팝에 이어 K컬처의 바람이 전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다. 한때는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긴 설명이 필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한국의 문화는, 설명이 아니라 자연스레 보이고 맛보아지며, 경험으로 기억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K컬처보다 먼저 불렸던 이름이 있다. 바로 K포스(K-force),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부대 이름이다. 한국전쟁은 한동안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서사에 가려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잊어서는 안 될 이름들과, 되돌아오지 못한 시간들이 있다.


1950년대, 뉴질랜드인들에게 한국은 지도 한쪽에 작게 찍힌 이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작은 이름을 향해, 그들은 UN의 요청에 가장 먼저 답한 나라 중 하나다. 자국의 영토나 안보와는 직접 연결되지 않은 전쟁, 그러나 '누군가는 지켜야 하는 평화'라는 신념이 그들을 바다와 대륙을 건너 먼 전장으로 이끌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당시 총리 시드니 홀런드가 “그 이름에는 반드시 K가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다. 마치 훗날 세계를 가로지를 'K바람'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K포스라는 이름 속에는,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가 한국의 위기에 기꺼이 응답한 용기와 마음이 담겨있다.


남태평양의 온화한 기후에 익숙한 그들에게, 한국의 매서운 겨울과 험준한 산맥은 낯설고 가혹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K포스는 바다에서 해상봉쇄와 호송임무, 그리고 육지의 격전지에서 강력한 포격 지원을 제공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육군과 해군을 합해 약 6,000명의 뉴질랜드 군인이 한국 땅을 밟았고, 그중 45명은 다시 고향의 바람을 맞지 못했다. 당시 인구가 약 200만 명 남짓이었던 작은 나라임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희생이다.


이름 모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아들과 남편을 내어준 나라, 우리는 그들의 피와 눈물의 빚을 지고 있다.

참전용사들의 회고록에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옷 한 벌 제대로 걸치지 못한 한국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쓸어내리던 순간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껴두었던 초콜릿과 통조림을 건네주었다 한다. 전쟁은 참혹했지만, 그 폐허 가운데에서도 국경을 넘어온 작은 연대의 불빛이 얼어붙은 시간을 잠시나마 녹여 주었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물들이기 오래전에, 먼 길을 건너와 한국의 겨울을 함께 견뎌준 K포스의 발자국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공감과 유대, 그 모든 평화의 시간 속에 그들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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