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빛으로 다시 마주한 '연가'

3부 | 경계 너머,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순간

by 그루 햇살나무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연가’는 한때 통기타 소리와 함께 청춘의 밤을 환하게 밝히던 노래였다.

서툴지만 진심이던 사랑, 캠프파이어의 온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젊음의 시간들...

그 모든 풍경의 배경음악이 되어 우리의 정서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깊은 애틋함을 품은 노래의 뿌리가, 실은 지구 반대편의 바람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바로 마오리족의 사랑 이야기를 품은 ‘포카레카레 아나(Pōkarekare Ana)’.

멀고 먼 그들의 노래가 어떻게 오래전 한국 땅에 전해지게 되었을까? 6.25 전쟁 당시 뉴질랜드에서 온 젊은 병사들, 그중 마오리 군인들이 전장의 외로운 밤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한 민족의 그리움과 용기가 실린 멜로디는 국경을 넘어 한국인의 가슴에 깊은 흔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이 노래에는 애틋한 사랑과 용기가 깃든 한 연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뉴질랜드의 대표 관광지 로토루아 근처 모코이아 섬(Mokoia Island)에 사는 부족장의 딸 히네모아(Hinemoa)와 육지의 젊은이 투타네카이(Tūtānekai)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깊은 연정을 품었지만, 두 부족 사이의 갈등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히네모아의 부족은 두 연인이 만날 수 없도록 호수를 건널 카누를 모두 숨기거나 불태워, 쉽게 오가던 호수는 이제 견고한 장벽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뉴질랜드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청년 투타네카이는 밤마다 호숫가에 나와 그녀가 있는 섬을 바라보며 피리를 불렀고, 히네모아는 이 애절한 피리 소리를 듣고 마침내 호수를 헤엄쳐 건너갈 용기를 내었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 밤, 그녀는 몸에 표주박을 여러 개 매달고 죽음을 무릅쓴 채 약 4km의 거친 물결을 헤엄쳐 투타네카이에게 도달했다. 목숨을 건 그녀의 굳센 의지에 족장인 아버지의 마음마저 움직였고, 두 사람의 결혼은 결국 두 부족의 화해를 이끌었다.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연가’의 원형인 것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거친 물살을 가른 이가 바로 한 젊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는 여자들의 존재감이 남다른 곳이다. 한국 어머니들의 여린 듯하지만 내적으론 강인한 것과는 결이 다른, 무언가 마오리 전사의 기질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이곳 여성들에게서 종종 감지된다.

그런 여인들이지만, 그들 역시 먼 전장에 떠난 가족의 안전을 간절히 바라며 그리움을 안은 채 이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았을까? 그 기원을 알고 나니, 오래 들어 익숙하기만 했던 멜로디가 마치 낯선 빛을 얻은 듯 새롭게 들린다.


수많은 이들의 애잔한 정서와 그리움 그리고 용기가 스며 있는 노래였기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 울림에 이끌려 즐겨 불렀던 것은 아닐까.

세월을 품고 건너온 노래의 숨결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작은 용기와 위로, 그리고 그 시절의 낭만과 따스한 추억으로 스며들기를.




이 노래의 울림을 직접 들어보시겠어요?

맑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연가가 잠시의 휴식을 전해줄 것입니다.

아래는 두 세계의 햇살을 품고서 한국인이 마오리어와 한국어로 부른 ‘포카레카레 아나’ 버전입니다.



연가(Pokarekare An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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