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끝에 걸린 'K신공'

2부 | 서툰 언어 너머, 마음을 잇는 풍경

by 그루 햇살나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김은 사람들에게 ‘검은 플라스틱’이라 불릴만큼 낯선 음식이었다. 한국 아이들이 갓지은 따끈한 밥과 반찬을 도시락으로 싸 가고 싶어도, 그 냄새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 탓에 즐기지도 않는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김밥과 스시가 매우 특별한 별미로 사랑받고, 낱개 포장된 김은 키위 아이들의 인기 단골 간식이 되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변화다.

십여 년을 일한 곳에서 어느 해 연말, 일본 레스토랑으로 회식을 갔을 때의 일이다. 모두들 들뜬 기분으로 다양한 종류의 디너 세트를 주문했고, 나는 접시 한 귀퉁이에 있는 콩 하나를 무심코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순간, 옆에 앉아 있던 키위 동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 일이, 그녀의 눈엔 기막힌 묘기라도 본 듯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와우, 이것 좀 봐. 젓가락으로 콩을 들어 올렸어! 세상에, 어떻게 그게 가능해?”
(Wow, look at this. She is picking up a bean with chopsticks! Oh, my God, how did you do that?)

그녀의 호들갑에 식탁의 시선이 일제히 내 젓가락 끝으로 쏠렸다. 그 자리의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나는, 본의 아니게 한국인이자 아시아의 대표 선수가 되었다. 순간 웃음이 났지만,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다니.’ 나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난도의 기술을 선보였다.

이른 바, ‘밥 알 하나 들어올리기 신공’

작고 하얀 밥알 하나가 젓가락 끝에 가볍게 들려 올려지는 순간, 식탁 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게 뭐라고 다들 흥분하여 포크를 내려놓고 젓가락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고급기술이 한 번에 익혀질 리 없었다. 콩은 고사하고 우동 면발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해 쩔쩔매는 그들의 모습이, 내겐 오히려 신기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그날의 식탁은 서툰 손끝과 터져 나오던 웃음이 빚어낸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마음에 남아있다.

그 떠들썩했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하게 된다. 밥알 하나를 집어 올리는 그 작고도 끈기 있는 힘은 섬세함과 집중력, 그리고 무수한 숙련의 시간을 거쳐 손끝에 배어든다. 문득, 이 단순해 보이는 젓가락질이 지금의 한국을 만든 저력과 어딘가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어릴 적 아빠에게 젓가락질을 배우던 기억이 스친다.

밥알 하나를 소중히 다루던 그 야무진 손끝의 감각이, 어느새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남반구에 한국의 매력이 고요히 불어오다가 이제는 깊게 물결치고 있다.


회식.jpg


이전 06화번역되지 않는 진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