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이름 곁에 앉은 오후

3부 | 경계 너머,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순간

by 그루 햇살나무

뉴질랜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뿌리를 품고 있지만, 그 사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두 개의 이름이 자리한다. 원주민인 마오리(Māori), 그리고 유럽계 혈통의 파케하(Pākehā)이다.


마오리는 약 13세기경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와 지금의 뉴질랜드 땅에 정착했고, 이 아름다운 땅을 발견하며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라 이름 붙였다.


이후 19세기, 영국계 이주민 파케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들은 뉴질랜드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며 정치와 경제, 교육의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 과정에서 1840년, 영국 정부와 마오리족은 ‘와이탕이 조약’을 맺어 두 민족간 파트너십의 법적·역사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두 언어의 해석 차이로 때때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마오리족은 식민화, 토지 상실, 동화 정책의 아픈 흔적을 기억하며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고, 파케하는 자신들이 원주민 문화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뉴질랜드는 다민족이 함께 살지만, 마오리와 파케하의 관계를 국가 정체성의 뼈대로 삼는 ‘이중문화주의(biculturalism)’를 추구한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뉴질랜드인의 애칭 ‘키위(Kiwi)’는 바로 그런 이름이다. 마오리, 파케하, 아시아계, 태평양 섬 주민.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모두가 하나의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넓은 우산 같은 이름.


거대한 역사의 물결은 결국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개인의 삶으로 스며들기 마련이다. 뉴질랜드의 많은 학교와 기관들이 마오리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역시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상담사로서 정회원이 되기 위한 과정 중에, 마오리 문화 자문을 위한 만남이 포함되어 있었다.

와이탕이 조약에 대해 공부도 했고, 마오리 회관에서 머무는 문화체험도 두 차례나 했기에 어렴풋이 예상되는 만남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마오리족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만남 속에서, 그 역사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민족에게 남긴 심리적·사회적 흔적을 조용하고도 진실하게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축복과 의미를 새겨 넣어 주신 마오리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쓰도록 강요받았던 일. 자신의 땅과 문화가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맞물려, 그 자존감의 그늘 아래 깊은 우울을 겪거나, 삶의 끈을 놓아버리려 했던 어머니와 친척들의 이야기...


책으로만 접하던 역사가 감정과 표정을 입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마음을 스쳐 눈가까지 번졌다. 잠잠히 듣던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당신과 당신 민족이 겪어온 이야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픈 역사를 지나오셨군요. 사실 한국도 오래 전 일본과의 관계에서 식민화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서로의 경험이 같을 순 없겠지만,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 흔적일지 조금은 헤아려져요.”

말하려면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 이야기를 풀어놓으러 간 자리가 아니었기에, 무엇보다 듣는 자리를 존중하고 싶었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오래된 역사, 그것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그녀가 알 리 없었다. 그러나 낯선 나라에서 온 동양인 여자가 자기 민족의 상처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아픔에 연결되었다는 진심을 전하자, 그녀의 눈빛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이내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준 것에 나직한 목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때로는 마오리 권리와 문화 지원 정책이 역차별의 시선으로 비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들려준 상처의 역사를 듣고 난 후론, 그들에 대한 내 마음과 시선에는 또 다른 빛이 입혀졌다. 역시 교과서에서 읽는 역사와,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결이 다르다.


해외에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한국인의 대표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날 작은 카페에서 나는 한국인을, 그녀는 마오리족을 대신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진 셈이다.


한 잔의 커피 사이로, 마오리와 한국이 서로를 비추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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