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나의 힘
주기적으로 고독이 나에게 찾아왔다. 겉으로는 아주 활발해 보여도 사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시간은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학부모모임, 브런치, 놀이터_남편은 늦게 들어왔고, 나는 점점 텅 비어갔다.
그렇게 나는 그 알 수 없는 정체의 공허함과 고독함의 원인을 파헤치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한 것 같다.
첫 번째 착수한 것이 맬 아이들 얘기, 학원얘기 하는 엄마들 말고 다른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모임을 찾았다. 그래서 7년 전 시작한 것이 독서 모임이었다. 하나도 지적이지 않은 나였으나 지적 대화에 목말랐다.
도서관 독서 모임과 사적 독서모임 두 가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모든 환경에 만족하고 엄마들과 브런치에서 낄낄 거리는 것이 해피했다면 그래서 고민하나 없었다면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을까?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읽는다고 한들 그때처럼 은혜로왔을까? 내 뻥 뚫렸던 마음은 책의 구절구절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아 이래서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었구나. 애 키우면서 결혼생활이 권태로워 지면서 맬 같은 이들과 그저 그런 얘길 하면서 나만 이렇게 고독하고 공허한 게 아니었어.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의 한 구절 ‘나를 완성하는 다른 타인은 없다. 나는 나를 완성한다 ’라는 구절은 내 갈증을 순시 간에 해소해 줬다.
내친김에 철학 강의도 듣기 시작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경험의 부재라고 했다. 나 자신을 충분히 알만큼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라캉은 우리 모두 불안, 무언인가 모자라고 부족한 기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욕망의 부재는 어떤 걸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내가 가진 이 감정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안 것 만으로. 그리고 타인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이제 또 다른 고독이 찾아왔다. 아이를 키울 때는 내 시간이 내 자유가 없어서 생기는 공허와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면 이제 50 넘어서는 무한한 시간과 자유 그리고 내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육아의 종료에서 오는 진정한 고독, 혼자 남겨진 시간의 고독이다.
그 시기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엄마 나 때리면 경찰 아저씨한텐 고소할 거야 하면 제발 독방이 내 소원이니 그래 달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혼자 만의 시간을 갈구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내가 40대의 내 감정을 무시하고 아무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지금 우울증 또는 빈 둥지 증후군으로 허둥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10년간 고독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한 나는 이제 고독이 찾아오면 무언가를 시작하는 원동력으로 쓰게 되었다.
7년 전 시작한 독서 모임은 여전히 이어 가고 있으며 같이한 멤버들과 에세이 집도 출간했다. 마음의 평정을 위해 시작한 요가도 10년 넘게 해 옴으로써 나의 루틴은 꽤 견고하게 짜여 아이가 빠져나간 자리에도 나는 즐겁게 내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고 즐길 수 있는 단단함이 생김으로써 인간관계에도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아쉬울 거 없는 사람이 위너 아니겠는가?
보면 좋고 안 봐도 좋고. 함께 해도 즐겁고 혼자 여도 즐겁고. 그리고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또한 어떤 면으로 우리가 나이 들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알게 해 준다.
그렇다고 내가 해탈을 했다거니 내 생활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 고독의 시간을 삶의 원동력으로 씀으로써 내 생활이 조금 견고해질 수 있었다는 거 정도다.
어느 순간 또 고독이 찾아온다면 나는 이제 그것을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그 시간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신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브런치 작가에 응모한 것도 내 권태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의 결과이다.
그 작은 돌파구 찾기 경험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하나로 귀결 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을 찾고 고독과 잘 함께 하기 위해 시도했던 수많은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신나게 살사를 추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