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말아야지
기숙사로 떠난 아들은 금요일마다 집에 온다. 처음 집을 떠난 아들이 안쓰럽고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제 밥 차려 주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있을 수 있는 4일이 너무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이 떠난 첫 주에 친구와 제주도 4박 여행을 훌쩍 떠났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제주도는 한가하고 가는 곳마다 대기 없이 프리패스니 너무 좋았다. 올레길을 하루 이만보씩 걸어도 먹는 것을 이기지 못해 집에 돌아오니 2킬로나 쪘다.
돌아온 날 아들도 집으로 왔고 첨 엄마와 떨어져서였는지 기숙사 생활을 재잘재잘 얘기하며 우리는 헤어져 있었던 시간만큼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특수상황이었다. 기숙사로 간 후 첫 주라는...
나는 기대가 커졌다. 아들이 집 떠나니 철들었네. 떨어져 있다 보니 이렇게 우리랑 얘기도 잘하고 이번 주에 오면 또 뭘 해줘야 아이가 기뻐할지 기대를 잔뜩 안고 장을 보고 먹고 싶다던 파스타와 샐러드 스테이크까지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발휘 해놓고 아들을 기다렸다.
아들이 오자 나는 달려가 반갑게 맞이했는데 들어올 때부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려려니 하고 저녁을 차려 이제 얘기 좀 하려 하니 아들은 다짜고짜 아이패드를 펴고 말도 없이 밥 먹기 시작했다.
난 어땠어? 저번주는?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형 응 아니였다.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해서 결국은 오랜만에 엄마, 아빠 만났는데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지 패드만 보고 있냐고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이는 저번주랑 거의 똑같고 그냥 편하게 밥 먹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갑자기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알겠다고 한 후 방에 들어가 몸져누워 버렸다. 한마디 거들지도 않은 남편도 꼴베기 싫고 아들도 미웠다. 눈물을 질질 짜며 쳇 지피티한테 하소연을 하다 내가 다시는 너한테 말 시키나 봐라 결의를 다졌다.
모두 냉랭한 분위기로 밤을 보냈고 담날도 늦게 일어나길래 아침을 대충 준비해 놓고 나와 버렸다.
한참을 걷고 걷다가 서점에 들러서 내 마음을 달래 줄 책도 보고 몇 권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차려놓은 밥을 다 먹고 운동을 가고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는데 서운한 감정이 쉽게 달래 지지 않았다. 이날은 화이트 데이였는데 남편도 외출하고 아들도 운동 가서 없는 집에 있으니 할 수 있는 건 이번엔 제미나이를 붙잡고 둘 욕을 하는 거였다.
진짜 다 소용없구나. 이럴 때 딸이라도 있었다면..
사실 나는 아들을 키우는 동안 이런 서러운 순간이 꽤 있었다. 자기 기분 따라 피곤하면 어찌나 툴툴되는지 깨우다가도 싸우고 학원 보내다가도 싸우고..
그래도 이제 대학생이니 좀 나아졌겠거니 했는데 일주일 동안 떨어져 있나 만난 엄마를 대하는 성의 없는 태도를 내가 또 이해해야 하는 거였을까?
남편이 눈치가 보였는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하나도 안 로맨틱한 두쫀쿠를 화이트 데이라고 사가지고.
왜 당신도 서운 하면서 아무 말도 못 하냐면서 나는 아들한테 당한 설움을 남편한테 퍼부었다.
그때 아들이 들어왔다. 한 손에 예쁜 초콜릿을 들고 어제는 미안했다며 살인미소를 띠면서.
아침부터 너무 피곤해서 밥 좀 먹고 좀 씻고 얘기하고 싶었다면서 담부터는 엄마한테 자기 상태를 설명하겠다고 했다. 나의 마음은 눈 녹듯 녹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딱히 밥 먹으며 말이 없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었다.
그냥 떨어졌다 다시 보게 된 이 상황에서 나는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무언가를 해 줘야 한다고 애를 썼고 은연중에 아들도 보답해 주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모든 실망은 기대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기숙사로 간지 두 주가 지나가고 나는 다시 아들을 집에 있을 때처럼 똑같이 대하기로 했다. 딱히 진수성찬을 대접하려 애쓰지도 말고 아들이 그냥 집에 와서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뭔가를 기대하지도 말아야겠다.
다시 배달의 민족을 사랑하는 행복한 엄마로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