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후의 인간관계

시절 인연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

by Daydreamer

아이가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 엄마들과 또 다른 인간관계가 시작됐다.

학창 시절까지는 거의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과 교류했고 온 세상이 그저 나와 비슷할 거라는 착각으로 살았으며 비슷한 남자와 결혼을 해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그러다 아이를 통해 여러 학부모들을 다시 만났고 나는 그중에서도 꽤 떠들썩한 엄마들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 자신도 노는 것. 꾸미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룹 지어진 그들도 술 마시기 좋아하고 한때는 나름 놀았던 엄마들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놀린다는 명목 하에 자주 어울리면서 언니, 동생 하면서 격이 없게 지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놀리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남자아이들 엄마와 여자 아이들 엄마로 나뉘면서 여자아이들 엄마들과는 소원해졌다.

남자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함께 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하나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는 엄마들이 생겨났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는 만나지 않았고 우리끼리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이에 더욱 부자가 된 엄마도 있었고 망해서 이 동네를 떠난 엄마도 있었다.

시간은 우리를 서로 다른 길로 가게 했다. 고등학교에 가자 아이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각자 취향에 맞는 친구들을 사귀었고 어렸을 때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게 됐다. 난 오히려 홀가분했다. 아이와 엄마가 뒤엉켜 지내던 단체 생활이 나는 무척이나 답답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사춘기가 되자 누구는 명문대를 목표로 매진하는 모범생이 되었고 또 어떤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반항아가 되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쌓아 온 그간의 정으로 우리끼리는 망년회 겸 일 년에 한 번은 만남을 이어갔다.


서로 가끔 만나 아이들 교육의 고충, 남편과의 소원함 , 늙어가는 외모를 한탄했다. 그러다 피부과 정보를 주고받고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졌었다. 그렇게 우리의 40대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입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비슷하게 보였던 우리의 상황이 대학입시 하나로 바뀐 것이다. 어떤 아이는 여전히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우울증에 시달려 입시조차 보지 못했으며 어떤 아이는 삼수에도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어떤 아이는 명문대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우리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경제적 차이도 나기 시작했다.

만남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할 말들이 늘어났다. 처음에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뭔지 알지 못했다. 만나고 오면 충전되는 느낌보다 내 에너지가 소비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재수를 해서 아들이 의대에 들어 가자 그 느낌은 좀 더 노골적이 되었으며 나는 그 불편함의 정체가 질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0이 넘으면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경제적인 차이부터 건강, 외모, 자녀의 성공, 집값 등등.

유치원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놀리며 여전히 젊은 엄마들은 서로의 미모나 가방 같은 자잘한 것들을 흘깃거리며 귀여운 질투를 한다. 비교가 시작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것들로 비교의 대상은 늘어난다.


그나마 같이 술이라도 마시면서 세상의 기준 같은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거야 했던 순간들도 나이가 들면서 백일몽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게 되고 밤새 노는 것도 힘이 든다. 서로에게 불편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다 빼면 신세 한탄뿐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임은 책모임이 되었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선을 넘지 않고 사적영역으로 깊게 들어오지 않는 적당한 관계.

그래서 나는 슬슬 그렇게 술 마시고 언니, 동생 하며 지냈던 관계들을 정리하려 한다. 거리 두기를 시작하고 좀 더 혼자 사색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고요한 삶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나이 들면서 생활에 무언가 흥미로운 요소가 점차 사라지기에 사람들은 추억팔이를 하거니 서로를 감정의 쓰레기통을 만들기 쉽다. 아니며 자신이 아닌 자신의 부, 자식자랑 등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정이라는 것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시절인연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들이 필요했고 그들 덕분에 울고 웃었으며 육아라는 극한 직업을 같이 겪어 냈다.


비슷하게 아이들이 잘되고 경제 상황도 좋은 친구들과는 좀 더 맘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진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점점 더 내려놓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내 취향에 맞춰 만들어 놓은 루틴을 따라가며 혼자 보내는 나날들이 점점 더 좋아지는 요즘이다.

내 마음의 편안함이 줄어든 인간관계와 반비례하며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