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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Feb 05. 2018

에세이란 무엇일까요

에세이를 즐기는 나를 생각하며,

에세이라는 것은 뭘까요.

대학생, 처음 에세이를 접해본 다음 혼잣말로 해본 소립니다. 과연 에세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4년 이상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제일 싫어하는 글의 종류”라고 단정지어버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에세이는 문학 중에서도 수필과 산문에 어울리는 일정한 틀과 스토리 라인
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편견이겠습니다만, 그 전까지는 에세이를 읽지도 않았고 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 글은 포토에세이네요



자신만의 책을 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포토에세이를 씁니다. 사실 꼴볼견이라고 생각했고(아아, 위험합니다) 대학생 때는 문학부심 때문에
에세이를 글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지요(국문학과도, 문예창작부도 아닌 녀석이 비평이라니 참 말 다했습니다). 한 마디로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는 기둥이다!’ 따위의 결론을 내리는 모습을 지금 반성하게 됩니다.

에세이라는 것은 essay. 어떠한 말의 틀이나 형태를 가지지 않고 작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한 일을 토대로 자유롭게 써 나가는 글이라고 합니다.




에세이라는 것. 누구나 접할 수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참 매력적인 글쓰기 방식입니다.
아마 이런 면이 거부감으로 다가왔을 것인데. 글에는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그 형태는 기본적으로 기-승-전-결 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결 까지의 과정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소설입니다. 소설 대부분은 그 형태를 존중하면서 전개됩니다. 기가 빠졌다느니, 전이 미미하다느니,
결이 없다느니. 그런 것은 미완성된 소설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미완성 소설이라는 건 또 뭘까요.



저는 처음에 이 에세이, 즉 형태를 탈피하는 글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어 도서관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다행히)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에세이,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뭐야, 진짜 술술 읽히는데 정말 재미있잖아? 흥미진진하구나.”
그 중 단연은 “슈퍼샐러드” 라는 이야기였는데, 여기서 스포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 에피소드를 꼭 보시면 이게 왜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보니까, 다른 에세이도 읽고 싶어지고. 여행기라는 것도 읽어보고 싶고 점점 넓혀갔습니다. 그래서
조금 유명하다 싶은 에세이들은 한 번씩 건드려보기도 했습니다.
좋은 에세이 중에서 우리나라 작가가 출판한 책은 이희인 작가의 <여행의 문장들> 이라는 책입니다.
또 좋은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는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 두 책은 제가 글을 쓰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기에 에세이에 푹 빠진 것이지요. 그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재미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피로감이 몰려오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기승전결에 매달려서 ‘도대체 언제까지 읽어야 진짜 결에 다다르게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에 해당하는 것조차 발견하지 못해 쩔쩔 매고 읽던 진 리스의 <한 밤이여, 안녕> 이라는 책은 정말 곤욕입니다. 그 책을
지금도 책장에 꽃아두고 있습니다. 아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세상에는 읽기 힘든 책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라는 단편집은 등산하는 것 같은 고난을, 대게 유쾌한 느낌을 주는 프레드릭 배크먼의
<오베라는 남자>도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가끔씩 문학에 지치고 힘들 때 저는 요즘에 에세이를 읽는 맛에 산답니다. 에세이를 읽으면 가벼워진다, 그래서 에세이는 가벼운 글이다.
=에세이 작가는 가벼운 사람들. 이런 결론 따위가 아니라. 아예 스타일이 다른 글을 즐기다보니까 기분이 편안해진다고 한달까요.
에세이는 보석같은 것을 찾아내면 찾아낼 수록 정말 재미있습니다.
책 안에 보물이 있다고 하였지요. 그 사람의 인생 속에서 우리들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터뷰를 담은 <반환점>이라는 에세이집을 읽고 있습니다. 이 에세이는 그의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를 기울일만한 이야기로 꽉 차있습니다. 캐릭터 뿐 아니라 사회의 문제와 전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집중합니다.
그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렇게 말합니다.


“질문:어떻게 하면 그렇게 차례차례 아이디어의 영감을 얻을 수 있나요?


답: 영화는 다 만든 순간 ‘아뿔싸’ 라는 느낌의 누적입니다. 스스로 만든 영화를 보면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어 제대로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웃음). 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러면 다음 영화라도 만들지 않는 한,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그래요. 다음 작품을 하지 않으면 2년이든 3년이든 뒤에서 꼭 달라붙어 쫒아오니까요.

-파크와의 인터뷰에서, 328쪽. "

저는 이 말을 받아들일 때 나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가 지금 이룬 것들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어? 똑바로 볼 수 있냐구.”
아 곤란합니다. 저도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서 똑바로 보기는 커녕 외면하고 있으니까요. 그 때마다 달라붙어 오는 것은 재수없는 자만심과 해냈다는
묘한 기쁨입니다. 자만심과 기쁨이 공존할 때는 참으로 위험하죠. 과거의 일을 금세 잃어버리고 ‘재대로’ 할 생각은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이 말은 처음
저에게 다가왔을 때 꽤나 아팠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만든 결과에 대해서 당당해지지 못한다면, 당당해 질 수 있도록 계속 앞으로 도전하고 그것이 재대로 되게 만들자!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이건 좀 재밌는 걸?’ ‘바보같은 생각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설이든 어떤 글이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가 가벼우면서 가벼운 글이 아닌 이유는 우리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쩌면 소설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발견하기 어렵지만 에세이를 통해서 삶이 뒤집어진 경우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에세이를 싫어하는
편견 가득한 사람이 에세이를 즐겨 쓰고 즐겨 읽게 되었으니까요. 남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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