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지음/돌베개/2017)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이상에 다가설 수 있는가? 대한민국을 더 훌륭한 국가로 만들려면 국민은 각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를 통해 이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오늘의 시점에서 내가 찾은 대답이다. - 초판 서문 中 -
『국가란 무엇인가』 를 다 읽고 난 후 내가 느낀 것은 작가 유시민은 이 책을 지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성실히 찾았다는 것이다. 여러 철학자들의 국가에 대한 사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자신만의 견해를 세우고자 그는 노력하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 초판 서문 中 -
서문에서 국가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읽고 보니 국가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렴풋한 인식이 아니라 "국가는 이것이다."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나도 이 책에서 얻고 싶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 이론인 반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다."
"스미스가 인정한 국가의 의무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 하나뿐이다. 국가는 세속의 신이 아니라 공공재 공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가 공공선을 진작한다는 명분으로 가하는 강제와 규제, 특권은 실제로는 공공선을 해친다. 스미스의 이론이 옳다면 국가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통치권자가 판단해야 한다는 국가주의 국가론은 존재 근거를 통째로 상실한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까지 정당하게 구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밀은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했다.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 이 단 하나의 경우 말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홉스에게는 개인이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이었지만 밀에게는 거꾸로 국가가 주체적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집합'이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은 오래 살아남겠지만 사회적 · 기술적 분업이 더욱 넓고 깊게 이루어지고 정보통신기술과 지식혁명이 진전될수록 기반이 점차 약해질 것이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위축되면서 생기는 담론 시장의 공백을 채울 다른 유력한 국가론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담론은 자유주의 국가론뿐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세계적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사상적 영토와 현실적 기반을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론 내부에서 진보적 흐름이 더 크게 분화 ·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크게 보면 역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다."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엄밀히 말해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홉스, 로크, 루소, 밀은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따져 물었다기보다는 국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살폈고, 국가의 기능과 바람직한 작동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국가가 무엇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대답한 것은 마르크스가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답이었다."
"마르크스는 국가의 폐지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사람이다. 국가의 폐지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해방을 이루는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그 자체가 소멸의 길로 들어선다.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자본가 개인에게서 '연합된 개인'인 사회로 이전하면 계급의 차이가 사라지고 국가권력도 계급 지배의 도구가 아니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가운데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며,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를 폐지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함께 계급대립의 존립 조건과 계급 그 자체를 폐지하고 종국적으로 자기 자신의 계급 지배도 철폐한다. 이렇게 해서 계급과 계급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예언 또는 전망이었다."
혁명이냐 개량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의 해법을 찾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는 결국 종교적 해결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각자가 욕망을 줄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속적 욕망의 구멍을 막는 것 말고는 집 안 골고루 열을 보낼 방법이 없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얻은 결론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훌륭하게 사는 세상을 원했다. 사람들 사이에 훌륭한 삶이 존재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훌륭해져야 한다. 사람들을 훌륭한 삶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삶을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수양하면서 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실천하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어 국가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종국적으로 시민 각자가 훌륭해지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 각자가 훌륭하지 않아도 시민 전체가 훌륭할 수는 있겠지만, 시민 각자가 훌륭하면 더 바람직하다. 각자가 훌륭하면 전체도 훌륭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의 목적으로 간주하고 훌륭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에게 훌륭한 삶과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요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그의 국가론이 내포한 수많은 철학적 · 이론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그리 간단하게 부정할 수 없다."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정치는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이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정치활동"이다. 나는 정치와 진보정치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렇다면 진보정치가 국가로 하여금 실현하게 하려는 선은 어떤 것인가? 진보주의자는 어떤 선을 실현하려고 국가에 요구하는가?"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활동이다. 국가의 정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을 만인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고, 각자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저마다 받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세워야 할 정의이다. 국가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한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평등하고 안전하며, 평화롭고 환경이 깨끗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간절하게 정의를 소망한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리고 이런 내가 진보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먼저 칸트의 도덕법부터 살펴보자. 철학자들은 보통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권한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라고 한다. 그러나 칸트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권했다. 올바른 삶이 아니면 진정한 행복은 없다고 했다. 이것이 칸트가 제시한 도덕법의 핵심이다."
"칸트의 철학은 정말 특별하다. 행복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것과 다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것을 하는데 합당한 규칙이 바로 도덕법이다."
"진보주의는 신념윤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스스로 부여한 도덕법을 준수하면서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는 결과보다 동기가 중요하다. 설혹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아름답다고 믿는다.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가 의미를 가지는 칸트의 도덕법이다."
"이제 국가에 대한 일곱 번째 질문에 다시 한번 대답해보자.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어떤 것인가?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다. 인간의 완전성과 선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 얻게 될 "예견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결과"를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는, 그리고 행위의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책임지려는 태도이다. 이것이 반드시 칸트의 도덕법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제력을 가지고 일하는 국가권력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때로 칸트의 도덕법을 외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세운 행위의 준칙이 아니라 단순한 '끌림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면서 '실용적 처세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다수 대중의 요구와 그들이 요구하는 행위의 준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질'의 위험을 안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 그것이 정치를 통해서 선을 추구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어떤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다. 그런 시민이라야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훌륭한 국가는 실업과 빈곤, 질병, 고령, 재해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서도 시민을 적극 보호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안보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토대로 삼지 않고 만들 수 복지국가(福祉國家)는 없다. 이 네 가지 모두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 모든 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절차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
- 맺음말 中 -
도서정보 :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지음/돌베개/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