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독서 후기
장강명의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이 책은 한국 문화를 전공한 일본인인 아내가 한국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보고 싶다며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이다. 결혼 전 소장하고 있던 대부분의 책을 정리한 터라 빈자리가 많은 책장에 몇 권의 애장도서와 함께 정리해두고는 한참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 책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왔다.
직장에서의 내부 전보 이후, 새로운 업무의 습득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은 피곤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강한 내면의 욕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즈음, 『한국이 싫어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전개될 이야기가 예상은 되었지만 나는 이 책을 그냥 쭉 읽고 싶었다. '뭔가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시원하게 세상에 대해서 한바탕 욕을 퍼부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등등, 어쨌든 시원한 사이다가 목으로 넘어갈 때의 짜릿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기자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서 그런지 주인공 계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상당히 사실적이었다. 지금의 청춘들이 겪는 고민을 실재감이 넘치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책을 쭉 읽고 있노라면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선택하는 이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다. 또한,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세상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책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행복'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다.
소설의 말미, 그러한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행기를 탈 때 한국 신문을 하나 집어 들었어. 정치 기사는 대충 넘겼고, 경제 칼럼을 정독했지. 그런 거 읽다 보면 영어로 배운 경제 용어나 회계 용어가 한국어로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어서 유용하거든. 초저금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내용이 나왔더라고. 자산이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현금흐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더라. 매달 100만 원씩 들어오는 수입이랑 자산 7억 원을 같은 거라고 생각해야 한대.
거기까지 읽었을 때 백인 승무원이 옆에서 식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 뭐가 있느냐고 물어보고 닭고기 요리로 하겠다고, 혹시 맥주도 줄 수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잊기 전에 말해 놔야겠다 싶어서 옆자리 앉은 재인이한테 얼른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에 대해 설명해 줬어.
"난 현금흐름성 행복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한번 잘해 줬다고 그게 며칠 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계속 꾸준히 상냥하게 대하고 칭찬해 주고 맛있는 거 먹이고 그래야 돼. 대신 뭘 크게 잘해 줄 필요는 없어. 무슨 이벤트 그런 건 안 열어도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음, 알았어!"
재인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알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미덥지는 않더라.
입국 심사대 직원은 무표정하게 내 여권을 받아서 슬쩍 보고 도장을 찍었어.
"해브 어 나이스 데이."
여권을 돌려받을 때 내가 말했지. 이민국 직원이 고개를 까딱하며 살짝 웃더라. 난 이제 "해브 어 나이스 데이."가 어떤 때에는 냉소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걸 알아. 미국에서 점원들이 주로 쓰는 인사라 영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이 말이 좀 웃긴다고 여기는 것도. 하지만 나는 이날부터 이 인사를 좋아하게 됐어. 그날그날의 현금흐름성 행복을 강조하는 말 같아서.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 불어. 햇빛이 짱짱해서 난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면서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나 자신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라고.
자~ 당신은 계나의 행복론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도서정보 :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지음/믿음사/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