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부부의 시장탐방]
나는 여행을 할 때 그 지역의 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을 가면 그곳 사람들의 삶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부터 막연하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끔씩 휴일에 서울의 전통시장을 아내와 나들이 삼아 둘러보는 것이다.
아내는 대학에서 지역학을 전공했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인인 아내는 한국의 도시 재개발 과정이나 저소득층 거주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 한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는 도시의 이곳저곳에 대해 답사활동을 하며, 한국 도시의 정취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연애시절부터 아내는 오래된 동네의 뒷골목처럼 우리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곳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는 그곳을 체험해보려 하고, 그 안에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을 더욱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지난 주말을 이용해 서울의 전통시장 탐방의 스타트를 끊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광장시장을 갔고, 일요일 오후에는 공덕시장을 갔다. 토요일의 광장시장은 엄청난 인파로 북적였다. 육회 골목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늘어선 사람 줄은 장관이었다. 유명하다는 육회집 앞에서 줄을 서서 육회를 맛볼까도 고민했지만 우리는 바로 아내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괜찮다는 육회 맛집을 향해 갔다.
이곳도 음식점 내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다. 딱 우리 부부가 앉을 수 있는 2인용 테이블만이 남아있었다. 부랴부랴 들어가 앉았다. 백팩을 메고 왔는데 가방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맨 채로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으니 점원은 바로 테이블을 세팅해주었다. 주문한 육회와 육회 덮밥이 나오기 전에 내어준 소고기 국이 참 맛있었다. 고깃국을 맞이하니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조촐한 테이블 위에 놓인 소고기 국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
주문한 육회와 육회 덮밥은 무척 맛있었다. 육회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고, 밥과 육회가 거의 1 대 1로 섞인 듯한 육회 덮밥은 그 조화된 맛이 일품이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는 육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지만 광장시장 "다래육회"에서 육회를 먹는 시간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육회집을 나와 광장시장을 둘러보던 우리 부부는 포장마차들이 늘어선 횟집 행렬을 보고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도 아내도 이곳에서의 2차 식사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길거리에 펼쳐진 좁은 의자에 걸터앉았으나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산낙지만 주문할지 아니면 모듬회만 주문할지 고민하다가 산낙지와 모듬회를 각각 1인분씩 주문하였다. 가격은 각각 15000원으로 그리 싼 편은 아니었지만 싱싱했다. 접시 안에서 꿈틀대는 산낙지도, 모듬회 속 붕장어와 소라 등도 모두 싱싱했다. "종문횟집"이라는 상호를 단 횟집이었는데 인정 넘치는 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창신아파트에 산다는 아주머니는 비워지고 있는 우리 회 접시에 소라를 한 움큼 채워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반 평 정도 되려나 그 좁은 작업장(?)에서 회도 썰고 설거지도 하는 아주머니는 그 생활에 단련이 된 듯 힘든 표정 한번 짓지 않고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한테도, 깨가 쏟아지는 젊은 커플한테도 변함없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토요일의 광장시장 탐방이 너무나 성공적이었는지 일요일의 공덕시장 탐방도 기대가 되었다. 족발골목으로 유명한 공덕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내심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를 탔다. 그러나 공덕역에 다다랐을 때 시장을 찾기가 힘들었다. 공덕역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족발집 몇 개가 모여있는 곳을 보고 그곳이 공덕시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내와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한 족발집에서는 아주머니가 후다닥 뛰어나오며 우리를 매장으로 들이기 위한 호객행위를 하였다. 음료수도 주고, 식혜도 준다고 하면서 우리를 유혹했지만 우리는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요일의 공덕시장은 한산했다. 문을 닫은 점포도 제법 있었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조그마한 시장 구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처음에 우리가 시장으로 들어갔던 입구에 돌아옴으로써 끝이 났다. 그곳에서 잠시 우리가 서있으니 족발집의 호객행위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들어갔다. "궁중족발"이라는 상호를 쓰는 집에 입장하여 한쪽 구석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에는 이미 새우젓과 마늘, 고추가 담긴 접시가 세팅이 되어있었는데 조금 지저분해 보였다.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보니 족발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오리지널 족발의 小자 가격이 27,000원이었는데 시장에서 먹는 족발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가격이 비싼 만큼 맛이 좋으려나~', 내심 기대하며 족발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하는 족발은 안 나오고 순댓국과 순대가 먼저 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족발이 나왔다. 보이는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족발이었다. '맛은 좀 다르려나~', 가장 먹을만한 부분을 집어 한입 크게 먹었다. 그러나 족발이 퍽퍽하고 맛이 없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을 먹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적당히 먹고 남겼다.
아내는 족발보다 오히려 메인 음식을 보조하려고 나온 순대가 더 맛있다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집은 족발보다는 순대가 훨씬 맛있었다. 남은 족발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렇게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집은 본래가 순댓국집이었던 것 같았다. 계산하고 받은 영수증을 보니 "궁중순대국"이라고 상호가 나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살짝 미소 지었다.
본래 순댓국집이었구만!ㅋㅋ
족발 맛에 많이 실망한 우리 부부는 그 아쉬움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공덕역의 마포 갈매기 골목으로 우선은 향했다. 그러나 족발이 맛이 없어 은근히 먹은 순대 때문에 식사 차원에서 다른 무엇을 먹기에는 배가 불렀다. 그래서 아내가 알고 있는 괜찮은 카페로 갔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카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명소인 듯~, 카페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빵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카페였는데 사람들은 그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음료를 마시며 빵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지만 빵만 사서 포장해가는 사람도 많았다. 빵의 종류는 많지는 않았지만 건강한 느낌을 물씬 주는 카페 "프릳츠"의 빵은 맛있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처럼 서로가 즐겨먹는 음료를 선택했다. 나는 아메리카노, 아내는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커피는 다른 카페에 비해 진했다.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그걸 빵이 잡아주었다. 빵과 함께 먹기에 딱 맞는 커피 맛이었다.
맛없는 족발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우리 부부를 빵과 커피가 있는 카페가 살살 달래주었다. 훈훈한 온기가 우리를 감싸주었고, 직원들의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모습에 힘이 생겼다. 바쁨을 즐기는 듯한 그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공덕시장 맛 탐방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쉬움과 실망, 위안과 기쁨이 함께했던 하루였다. 빌딩 숲 사이에서 최소한의 공간만을 남겨둔 채 그 명맥을 이어가는 공덕시장이 애처로웠다. 서울을 대표하는 족발골목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듯 힘찬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