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수업 : 참된 성장을 이루는 진정한 삶의 노하우[가치관 영역#12]
중년의 부부가 수도권에 속한 한 도시의 시내버스를 탔다. 도시 안에 있는 역사 유적을 관광하기 위해 이 도시를 방문한 부부는 유적지로의 이동뿐만 아니라 처음 방문하는 도시의 시내 구경도 할 겸, 버스를 탔다. 그러나 안정감 있는 속도로 창밖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느긋하게 구경하고자 했던 중년부부의 계획을 비웃듯이, 버스는 가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며, 거칠게 달린다.
몇 정거장을 지나 한 아주머니가 버스에 탄다.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는 급출발을 하고, 아주머니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다. 그리고 "아이고!" 소리를 내며, 기둥에 어깨를 부딪친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기둥을 부여잡고, 가까스로 자리에 앉고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버스기사의 거친 운전이 아니었다면 넘어질 이유가 없었을 텐데도 버스기사에게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넘어지는 순간 버스 안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중년부부를 제외하고 버스에 있는 대부분의 좌석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아주머니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나서서 버스기사에게 안전운전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을 젊은 혈기에 의해서라도 모른 척하기 어려울 법도 할 텐데,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넘어져 꽈당 소리가 나도, 잠깐 쳐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리고 자기들끼리 잡답을 하거나 휴대폰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다. 아니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중년부부가 버스기사를 점잖은 말로 나무란다. 그때서야 정신없이, 사납게 운전을 하던 버스기사는 넘어졌던 아주머니에게 삐쭉 사과를 한다.
우선, 아주머니는 왜 버스기사에게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는 것인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난폭운전에 넘어져서 엉덩방아도 찧고, 기둥에 어깨를 부딪치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 여자는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가? 단호한 어조로 운전을 조심해서 하라고 버스기사에게 왜 말을 못 하는 것인가?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한 그녀의 태도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다음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다수의 젊은이들은 청춘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는 않은가? 너무나 개인적인 삶의 자세로, 부작위로 정의(正義)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삶에 대한 열정과 패기가 세상으로 뻗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에만 치우쳐있는 것은 아닌가?
마지막으로, 버스기사는 그의 거친 운전에 대해 지적을 받으니깐 그때서야 비로소 넘어진 아주머니에게 사과를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승객의 안전에 집중해서 운전을 똑바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거칠고, 사나운 운전으로 버스기사는 그 도시를 처음 방문한 관광객에게 도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엉망으로 심어주었다. 그것이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일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말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것도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아울러 정의감이 사라진 젊은 청춘들은 어떤가?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의 일원이 되는 것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살기에는 그들이 가진 청춘의 혈기가 너무나 아까운 것은 아닌가?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은 쳐다보려는 마음조차 없는 청춘들을 두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이 맡은 바 업무를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것도 정의로운 삶의 한 부분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때 세상은 신뢰로 밝아지고, 보다 살만해진다. 정의(正義)가 실종된 사회는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들 각자의 좋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성장 수업 : 참된 성장을 이루는 진정한 삶의 노하우
[가치관 영역] 제3강. 정의(正義)
"박노국의 참된 깨달음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