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승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2019년 정기 승진자 명단에 나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날한시에 입사했던 같은 직종의 대부분의 동기들이 승진했지만 나는 몇몇 동기들과 함께 승진 누락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맞이해야 했다. 회사의 평가에 연연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진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직업인으로 살기 시작한 세월이 제법 흘렀지만 실질적으로 맞이한 승진 누락이라는 사실은 나에게도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경우마다 내가 걸어온 회사생활에 대한 상념에 젖어들었다. 특별히 크고, 많은 업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맡은 바 직분에 충실했던 지난날이었다. 다만, 승진과 포상을 노리며 회사에서의 출세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가야 할 진짜 내 길을 찾고,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려고 애썼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러나 나는 승진을 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퇴근해서는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지향했던 나는 회사에서의 경쟁에는 어느 순간부터 관심이 없었다. 20살 이후, 차라리 포기를 했을지언정 마음먹은 것을 쟁취하는 경쟁에서는 진 적이 없었던 나였지만 회사에서의 경쟁에서는 초월해 있었다. 회사보다는 회사 밖에서의 승승장구를 열망하는 나였다.



하지만 피부로 와 닿게 된 승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확고한 신념에 의해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 안에서는 같은 직종의 입사 동기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밀려왔고, 1년 후, 2년 후 …, 나의 승진은 언제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제법 차이가 나는 후배들보다도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승진하지 못했다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으면 잡을수록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괴로운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불편한 생각과 불안감은 며칠 동안 나에게 틈틈이 찾아왔다. 업무를 하다가도 문득 든 생각으로 우울해지고, 휴일에 독서를 하다가도 책장을 넘기다 든 생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아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전혀 원하지 않았던 삶의 과정을 나는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필요했고, 내 안의 나약함을 떨쳐낼 재정비된 비전이 필요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잘한다, 잘 못한다 …,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지켜보며,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내 옆을 지켜주는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때로는 조금 감정적으로 생각을 말하더라도 아내는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잠자리에 누워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해도 아내는 그런 내 말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대로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애초에, 경쟁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야 할 궁극의 길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을 뿐, 회사에서의 출세에 나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듯, 내 마음을 핍박하던 불편한 생각과 불안감이 사라졌다. 내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해서 단 한 번도 승진과 포상을 위해 경쟁하려고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돌파구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데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놓고, 나와 비슷하게 입사한 동기들과 나를 비교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괴로운 것이었다. 그들과 나는 분명히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다. 그들 중에는 회사에서의 승진을 위해 매진한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승진 여부로 나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한참을 이야기하던 끝에 아내가 나에게 해준 말처럼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 변함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이기는 길이고, 그것이 내 삶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였다. 회사에서의 승진 여부는 내가 행복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게 못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꿈과 나의 가족에 집중하고, 진짜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회사의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열흘 정도가 지난 지금의 나는 그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고 있으며, 집에 와서는 글을 쓰고,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달리진 것이 있다면 내 마음가짐이었다. 외부의 평가에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더욱 충실하게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이전 21화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