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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우리의 첫 신혼집, 그 시작과 끝 vol.5


우리의 첫 신혼집에 임차권 등기가 기재된 이후로도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무데뽀 임대인의 건방진 태도도 변화가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래도 소송은 피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건만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임대인은 여전히 돈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소송 이외에 어떤 수단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우리의 첫 신혼집 보증금 반환을 위한 소장을 작성했다.  


테어 나서 처음으로 작성해보는 소장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민사소송 실무 서적을 참고하여, 나의 사연과 주장을 요약해서 담아낸 소장을 완성하였다. 변호사나 법무사와 같은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장을 작성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억울함을 온전하게 전달하려면 내가 직접 소장을 작성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나는 소 제기를 위해 낸 휴가 3일을 꽉 채운 끝에 소 제기를 완료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때마다 법원을 왔다 갔다 할 수 없었기에 전자소송을 통해 소송을 진행했다. 전자소송은 종이소송에 비해 여러모로 편리했다. 매번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법원을 갈 필요가 없었고, 법원에서 송달되는 서류도 전자적으로 받으면 되었기에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장은 접수되었으나 임차권등기명령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에서 송달되는 서류를 계속해서 받지 않는 임대인으로 인해 재송달 신청 등을 해야 한다는 보정명령을 받았고, 신경은 계속 쓰이는데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이 싸움을 나 혼자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밀려왔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 끝에 우리의 첫 신혼집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을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소장도 내가 작성하고, 법원의 첫 번째 보정명령에 대한 재송달 신청도 내가 했기 때문에 소송의 대부분을 내가 한 것이었지만 신경은 계속해서 쓰이는데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사건을 나 혼자 전적으로 짊어지고 끌고 가는 것은 나와 아내 모두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퇴근 후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 하고 민사소송 관련 서적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에서 나는 소송과 관련한 불안감 등의 무게를 내가 스스로 덜어 낼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위임한 우리의 첫 신혼집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은 구조 결정이 났고, 담당 소송 대리인도 선임되었다. 확실히 우리의 사건을 대리할 소송 대리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송과 관련한 심리적인 무게를 덜어주었다. 하지만 지극히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공익법무관의 태도는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고 사건을 맡길 수 있도록 하지는 못했다. 나의 억울한 사연에 공감하여 나를 대변하기보다는 귀찮은 일거리를 하나 더 떠맡았다고 느끼는 듯한 그들의 태도가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한편, 법원에서 보내는 소장을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받지 않던 임대인은 결국 특별송달로 보내어진 소장을 받게 되었다. 소 제기 후 딱 2달 만에 소장이 피고에게 도달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쯤 우리집에도 법원의 우편물이 오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법률구조공단에 소송을 위임했기 때문에 나에게 법원의 우편물이 올 일이 없었다. 나의 소송과 관련한 법원의 우편물이라면 내 관할 법률구조공단으로 갔을 터였다.


법원에서 온 등기 우편물을 열어 봤더니 건물명도(인도)의 소장이었다. 임대인이 내가 제기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과는 별개로 건물명도(인도)의 소를 제기한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다. 내가 제기한 소의 소장은 그렇게 의도적으로 안 받더니 오히려 자기가 건물명도(인도)의 소를 법무사를 사용해서 제기한 것이었다.


내가 제기한 소의 소장을 받고 그것에 대응하면 되는 것인데 그렇게 의도적으로 소장을 안 받으며, 비겁하게 시간만 끌던 임대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임대인이 이제 와서 나한테 소를 제기했다는 사실이 정말 황당했다. 이런 악질 중에 악질인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 이래저래 고민하던 때에 임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건방진 태도로 갑질이나 하려고 했던 임대인의 어투가 공손해졌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합의를 제안했는데 똥줄이 많이 타는 듯해 보였다. 합의의 골자는 계약 만기일을 기준으로, 본래 주어야 할 임대차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고 자신이 제기한 건물명도(인도)의 소를 취하할테니 내가 제기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청구의 소를 취하해주고, 우리의 첫 신혼집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기재된 임차권 등기를 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때가 우리의 첫 신혼집 계약 만료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 세월, 불필요한 소송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게 한 임대인의 잘못을 생각하면 끝까지 소송을 끌고 가서 본때를 보여주고도 싶었지만 더 이상 임대인과 같은 수준 낮은 사람을 상대하며, 지루한 소송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내 또한 임대인과 같은 쓸모없는 사람 때문에 내가 더 이상의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임대인의 합의안을 받아들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첫 신혼집의 임대차 보증금이 나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결국엔 주어야 할 돈 그대로 송금할 돈이었으면서, 그 돈을 최대한 안 주려고 그렇게 용을 쓰다니 …, 다시 생각해도 임대인은 많이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계약 만료 후, 약 5개월 동안 이어지던 우리의 첫 신혼집 임대차 보증금 반환 사건은 결국, 집의 계약이 만료되던 날, 우리가 이사해 주었던 그날에 받아야 할 돈 그대로를 받고 종료되었다. 그 사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의 제기, 소의 취하, 임차권 등기 해제 등을 거치며, 나는 퇴근 후의 시간을 신혼집 사건을 해결하는데 고스란히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지난 5개월 사이에 여러모로 단련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소송을 위임하지 않고, 직접 수행해봄으로써 웬만한 소송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소송을 위임해봄으로써 그들을 상대하는 마음가짐도 익힐 수 있었다. 소송 대리인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 그들에게 소송은 누군가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정의롭게 대변하는 기회이기 전에 그저 처리해야 할 쌓여있는 업무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첫 신혼집 임대차 보증금 반환 사건을 통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소송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경우를 겪어 보았다. 내 삶의 명예를 지키고, 살아감에 있어서 세련된 사람이 되기 위해 최대한 분쟁의 씨앗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자기 것이 아닌데도 욕심만 부리는 못난 인간의 광기 때문에 겪은 어쩔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겪어본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을 상대하는 마음가짐이 보다 대범해졌으며, 올바름을 관철하면서 굳세게 인생을 살아가는 노련함도 얻게 되었다. 아울러 내가 걱정을 하면 내 가족이 걱정을 하고, 내가 고민을 하면 내 가족도 고민을 하는 핏덩이 상관관계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가장인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다시 겪고 싶은 경험은 아니지만 지난 약 5개월의 시간은 내가 진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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