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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봉주야! 내가 너의 아빠란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이거 받아. 결혼기념일 선물이야"     


결혼 2주년 기념일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 퇴근한 나에게 아내는 선물이라며 자그마한 파우치 하나를 뜬금없이 건넸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레스토랑도 예약을 했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는 이미 다 끝났는데, 갑작스럽게 선물이라니 …,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선물?, 갑자기 웬 선물이야?"


"열어봐. 열어보면 아니깐"     


나는 아내가 건네준 파우치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수첩과 사진 그리고 작은 약통이 하나 있었다. 수첩에는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사진에는 둥글둥글한 형체의 얼굴, 몸통, 팔과 다리가 마치 곰인형처럼 보이는 태아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약통은 엽산이었다.     


"나 임신했어, 벌써 9주 차래"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가 건네준 것은 우리 부부의 2세가 생겼다는 확인된 징표였다. 초음파 사진이 아니고서는 그 존재를 느끼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서 자리 잡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임신 9주 차, 마치 곰인형처럼 보이는 "봉주"


작년 후반기부터 아내와 나는 아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며, 서로에게 충실했던 우리 부부는 신혼생활이라는 삶의 과정에 몰입하였다. 일상이라는 소중한 삶의 페이지를 신혼이라는 기억의 사진첩에 저장하며 우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임신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정말 아내가 나의 아이를 뱃속에 품게 된 것이었고, 진짜로 내가 아빠가 된 것이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의도하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찾아온 아내의 임신 소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과 설렘을 선사하며, 새로운 신혼의 삶도 선물하였다.     

 

임신 12주 차, 아기 다운 모습이 보이는 "봉주"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짓기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행하는 태명 짓기의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로 아이의 태명을 지었다. 임신된 아이가 우리 부부의 가족이 되었음을 축복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태명을 부를 때마다 느껴지고,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아내와 내가 부를 수 있는 그런 태명을 우리는 짓고 싶었다.      


"봉주"


"이게 너의 태명이란다."     


아내는 나를 부를 때 '봉봉'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남편인 나를 부를 때 '봉봉'이라고 부르면 훨씬 사랑스럽고 편하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남편이지만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써왔던 나를 특정하는 애칭으로 남편을 부르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봉봉'이란 아내만의 애칭에 적응했고, 나도 아내를 '봉봉 마누라'의 줄임말인 '봉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는 '봉주'가 되었다. '봉봉 주니어'를 줄여서 '봉주'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아이의 태명을 지은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 봉주와 대화를 한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기를 쓰듯 그날의 일상을 우리 부부는 봉주와 나눈다. 무엇을 맛있게 먹었는지부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구절까지도 …, 일상을 채워준 소중한 순간들을 우리는 봉주와 나눈다.      


임신 16주 차,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봉주"


매일 밤 봉주와의 대화를 위해 아내의 배 위에 손을 올리면 하루가 다르게 봉주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아내의 아랫배 변화를 느낄 때면 봉주가 자라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본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랑한 결실이 봉주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과 일본을 담으며 살아가게 될 아이가 우리 봉주였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른, 특별한 정체성을 지니게 될 우리 봉주에게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우리 봉주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 상념에 젖어들다 보면 밀려오는 책임감에 때로는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세상을 초월한 성인군자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나는 약속할 수 있었다.      


"안녕, 봉주야! 내가 너의 아빠란다."


"아빠가 너에게 분명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어"


"내가 너의 진짜 내 편이 되어줄게"


"멋진 아빠, 좋은 아빠, 잘난 아빠가 아니라 너의 삶을 진정으로 응원하는 소중한 가족, 너만의 진짜 아빠가 되어줄게"     


"사랑한다, 봉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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