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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권등기명령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우리의 첫 신혼집, 그 시작과 끝 vol.4

신혼집의 에어컨 문제가 해결된 이후, 우리 부부는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쌓아갔다. 동네의 맛집 리스트도 하나씩 축적해 갔고, 가고 싶었던 곳을 한가롭게 여행도 하며, 달콤한 신혼의 추억을 만들어 갔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아내와의 신혼생활을 나는 꽉 채워서 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우리의 첫 신혼집의 계약 만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행복한 신혼의 한때를 보내느라 의식하기를 미루고 있던 이 사실을 신혼집의 중개인이자 관리인이 붙잡게 해주었다. 관리인은 신혼집의 계약 만기일 약 2개월 전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살고 있는 집의 계약 만기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인으로서 신혼집의 계약서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던 사람이 집의 계약 만기일을 알려주는 것은 누구보다도 빨랐다.  

1년으로 계약한 신혼집의 만기일은 KTX의 속도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귀찮아도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다시 이 집을 재계약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아내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얼마간 고민하던 아내는 나에게 관리인이나 임대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집은 문제가 없으니깐 괜찮다면 이사를 하는 것보다는 이 집에서 다시 얼마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 또한 몇 가지 조건만 맞는다면 다시 이 집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임대인은 터무니없이 많은 임대료 인상의 속내를 드러냈고, 관리인은 세입자의 편의는 무시하고 자신이 보유한 물건에 돌려 넣기로 이사를 시켜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챙기려고 하였다. 결국, 우리는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고, 계약 만기일에 이사해 줄 것을 임대인에게 통보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첫 신혼집의 계약 만기일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처음 계약할 당시 그대로의 신혼집을 임대인에게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임대인은 주택의 인도와 보증금 반환이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음에도 보증금을 반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우리 부부는 계약 만기일에 약속대로 이사는 해주었으나 보증금은 돌려받지 못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첫 신혼집의 계약은 만료가 되었다. 그러나 임대인은 계속해서 보증금 반환을 지체하였다. 보증금 반환과 주택의 인도가 동시이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무조건 퇴거 확인이 먼저 되어야만 보증금을 반환해 주겠다는 주장만을 하며, 사안의 해결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간만 끌고 있었다. 

임대인이 그토록 원하는 퇴거 확인을 우리는 이사를 해준 계약 만기일과 그 이후에도 줄곧 해주려고 했음에도 집을 확인하러 오지 않았던 사람이 임대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약이 만료된 빈집을 가지고, 퇴거 확인이 안 되면 주거 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어 월세와 관리비를 보증금에서 차감하겠다며 오히려 우리를 압박했다. 

임대인은 최대한 당사자 선에서 합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우리의 보증금을 어떻게든 안 주려고 용쓰며, 월세 차감이라는 압박을 통해 우리를 강압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충분한 고민 끝에 그에게 더 이상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순순히 보증금을 내줄 사람이었으면 벌써 내놓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직장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에서 관련 법률서적을 빌려 참고하고,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얻으며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소송은 최후의 방법으로 생각했던 나는 법적 대응의 1차적 방법으로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한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임차권등기명령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는 절차는 법원과 관련한 업무를 어느 정도 접해본 사람한테는 간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법학을 전공해 법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련 실무자가 아니면 버벅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 법원의 사무였다. 나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준비해야 할 서류들을 작성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모았다. 

그렇게 모든 서류를 갖추고,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그것을 준비했던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신청 과정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법원을 나서는 순간, 허망함이 밀려왔다. 무데뽀의 개념 없는 임대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번잡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법원은 임차권등기명령 결정을 냈다. 그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계약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는데 이사는 할 수밖에 없는 임차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 법원은 당연히 임차권등기명령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런 당연한 사안에 대한 증명을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했다. 귀찮았고, 짜증도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한다는 것은 곧 나의 권리를 내가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었고,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량한 원룸 하나를 임대하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본 상식도 없이 막무가내로 갑질이나 하려고 하는 임대인의 작태를 그냥 봐줄 수는 없었다. 내가 조금 귀찮고, 수고스럽더라도 이런 류의 인간에게는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니 마음이 편해졌고, 다음의 상황들을 견뎌낼 의욕이 생겼다. 하지만 임대인은 법원에서 보내는 임차권등기명령 결정문을 계속해서 받지 않았고, 결국 우리의 첫 신혼집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나의 이름으로 임차권등기가 기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웬만하면 소송은 피하고, 조정과 타협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고 싶었던 나였기에 신청한 임차권등기명령이었다. 임대인이 법원으로부터 임차권등기명령 결정문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보증금 반환을 위한 노력을 할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데뽀로 일관하며, 보증금을 정상적으로 반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임대인에게는 나의 속 깊은 행동도 통하질 않았다. 임차권등기가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기재되었음에도 임대인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토록 안 하고 싶었던 소송, 더 이상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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