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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부부, 둥지를 틀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우리의 첫 신혼집, 그 시작과 끝 vol.2

입주 날짜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신혼생활이 시작될 집에서 드디어 같이 살게 되었다. 혼인신고를 한 이후,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제는 아내와 방도 같이 쓰게 되고, 집에 와서 식사를 할 때면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지만 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언제나 아내와 내가 하나였던 것처럼 특별한 이질감도 그리고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느라 쇼핑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 내 삶의 흐름은 그대로 흘러갔다.  


아내는 우리의 신혼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한국에서의 체류자격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고, 신혼집으로 입주를 하던 시기는 아내가 계속해서 한국에 체류하기 위한 비자와 관련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때였다. 한국에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온 아내였기에 아내의 체류자격은 늘 학생이었다. 그러나 한국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고,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마친 이상 이제 더는 학생비자로 한국에 체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무렵, 우리의 신혼집에는 오전 시간이면 늘 까치가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직장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우리가 집에서 쉬는 날이면 언제나 까치가 우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혼집은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의 한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층의 주거용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중간쯤에 위치한 집이라서 산과 나무들과도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신혼집의 화장실 창문 밖에서는 까치 우는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집에서 쉴 때마다 까치 우는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니 점점 그 소리의 원인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화장실 창문을 열어 본 순간, 왜 그토록 반복적인 까치 울음소리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신혼집의 화장실 창문 밖에는 까치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공사는 아직 초기 단계였다. 까치는 창문 밖의 얼마 안 되는 공간을 이용해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화장실 창문 밖, 가로와 세로 약 20cm의 공간은 흙과 까치의 분비물이 뒤섞인 까치집 바닥이 형성되고 있었다. 마치 콘크리트로 바닥을 깔듯이 까치들도 그들의 방식으로 단단한 바닥을 만들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빌딩 숲을 구성하는 그 수많은 집들 중에서 까치는 왜 하필 우리 집을 선택해서 까치집 철거라는 귀찮은 일거리를 만드는지 …, 미운 까치 새끼(?)였다.

그러나 열린 화장실 창문을 조용히 닫고, 방으로 돌아와 나는 차분하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순간적으로 짜증 났던 마음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그 이유는 빌딩 숲의 수많은 집들 중에서 까치가 자신의 둥지를 틀기 위해 우리 집을 선택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이 우리 부부가 서로 마음 맞추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집이라는 것을 까치는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서 좋은 기운이라도 느낀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좋은 징조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까치는 탁월한 집 선택의 안목과는 달리 둥지의 위치 선정은 잘못하였다. 그 이유는 까치가 결과적으로 화장실 창문 밖에 둥지를 틀게 되면 우리는 화장실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화장실 창문이 미닫이 창문이 아니라 밖으로 밀어서 열고, 안으로 끌어서 닫는 창문인지라 창문밖에 까치의 둥지가 존재하면 우리는 창문이 완전히 폐쇄될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었고, 아내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아내는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까치의 둥지는 우리의 신혼생활을 축복하는 길조(吉兆)라고 생각했지만 화장실 창문을 못쓰게 만드는 상황은 해결해야 한다고 아내도 생각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아직 공사 중인 까치집을 제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둥지의 기초공사를 한 까치의 노력이 아깝기는 하지만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가족과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까치의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위치에 까치가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의 샤워기로 물을 뿌려 까치가 만들어 놓은 둥지의 흙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그리고 충분히 흙바닥이 물을 머금었을 즈음, 단단히 접은 1L 우유팩을 이용해 물먹은 흙을 밖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흙을 밀어낸 부분에 샤워기로 물을 뿌렸다. 그렇게 한참을 했더니 까치가 둥지를 틀려고 기초공사를 했었던 흙바닥이 흔적도 없이 말끔히 없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휴일인지라 늦은 시간까지 자서 밝아진 세상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던 그 시간, 우리의 신혼집 화장실 쪽에서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분명 까치집이 되어가던 그곳을 제거해버렸는데 …, 여전히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동안 그 울음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춘 소리의 흔적을 따라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 창문을 밖으로 밀어 열었다. 그리고 창틀 너머로 간신히 보이는 창문 밖의 바닥을 확인해 보았다. 그곳에는 까치도 없었고, 흙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깨끗이 청소해놓은 가로와 세로 약 20cm 크기의 맨바닥만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화장실 너머로 들렸던 까치의 울음소리는 까치가 우리 부부에게 한 작별 인사였다.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위치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까치가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까랑까랑하게 들려오던 까치의 울음소리는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 새 삶을 시작하는 까치의 힘찬 외침이었다. 그리고 단칸방 신혼집에서 첫 둥지를 틀고, 한마음이 되어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보겠다는 젊은 한일 부부의 내일을 응원하는 고마운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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