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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리고 신혼집 구하기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우리의 첫 신혼집, 그 시작과 끝 vol.1

한국과 일본이라는 서로 다른 국적의 남녀가 만나 가족이라는 똬리를 틀기로 약속한 우리 부부는 한국의 일반적인 커플들과는 조금 다르게 결합의 수순을 밟았다. 한국에서 결혼을 하는 대부분의 커플들이 결혼식을 기점으로 함께 살며 혼인신고를 하지만 우리는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함께 살았으며 그리고 둘만의 결혼식을 치렀다.  


나와 아내는 둘 다 결혼에 대해서 명확한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결혼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혼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마음 맞추어 함께 인생을 잘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결혼식이 아니라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결혼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우리답게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혼인신고는 했으나 함께 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결혼생활을 시작할 신혼집을 아직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혼집의 선택지는 여러 가지였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신혼집을 살 수도 있었고, 목돈을 묶어두고 전세를 얻을 수도 있었으며, 월세를 내고 신혼집을 구할 수도 있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풀옵션이기는 하지만 10평도 안 되는 단칸방을 월세로 1년간 계약하였다. 큰돈을 사용해서 마련해야 하는 신혼집이 선택의 순간에서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우리는 원했다. 집을 옮겨야 할 때 구입한 집을 제 돈 받고 팔아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고,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큰돈을 집이라는 것에 묶어두는 위험부담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을 알콩달콩하게 녹여낼 공간만 있으면 되었다. 방이 여러 개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신혼집을 채워주는 화려한 가구와 전자제품들도 필요하지 않았다. 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최소한의 장비(?)만 있으면 되었다. 우리의 사랑을 가꾸고, 키워갈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내와 내가 직장을 다니는 데 있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울의 한 지역이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하고, 출·퇴근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지 않는 곳이면 되었다. 그러나 집 자체는 문제가 없어야 했고, 관리가 잘 되어서 물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요소가 없는 집이어야 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서 정신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요소는 없어야 했다.

이러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집을 보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기까지 약 2주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기준에 맞는 집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집세가 싸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하거나 외진 곳에 집이 위치해 있는 등, 꼭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씩 있었다. 그렇다고 집세가 비싸다고 해서 다 좋은 집도 아니었다. 여러 집을 둘러보다 보니 제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집세가 높은 집도 제법 있었다.       

많은 기준을 가지고 집을 찾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신혼집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합리적인 가격에 우리가 원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충족되는 건전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신혼집 구하는 것이 지쳐갈 무렵, 나는 내가 찍어둔 지역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 더 서울의 중심 쪽으로 움직여서 집을 구해보기로 했다.

평소에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동네였다. 나와 아내에게는 어떠한 인연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동네였다. 지금까지 집을 알아봤던 동네는 그래도 회사에서 회식이라도 있거나 개인적인 약속이 있으면 한 번씩 방문했던 동네였는데 이곳은 옆 동네임에도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혼집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절정에 다다른 시점이었고, 척하면 척~, 집을 보는 안목도 최상인 상태였다.   

결국 이곳에서 우리의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동네에서 처음에 들어간 부동산 사무실에는 마땅한 물건이 없었고, 그 사무실과 연결된 다른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나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확인할 사항들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을 끼고 하는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완료되기까지 뭔가 불안하였다. 집 자체는 실체로든, 서류로든 문제가 없었지만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이상했다. 내가 처음 들어간 부동산 사무실에서 연결되어 간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인은 업무에 있어서 꼼꼼하지 못했고, 덤벙거렸다. 특히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는 기입해야 할 내용을 여러 번 틀렸다.

그렇지 않아도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인이 내가 앞으로 살 집의 관리인이기도 하여서 썩 유쾌하지 않았는데 핵심적인 부분에서 자꾸만 실수를 하는 부동산 중개인의 모습은 나에게 더욱 불안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의 경험을 통해 적당한 가격에 그나마 맘에 드는 물건을 서울에서 마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임대인과의 유착관계가 여실히 엿보이고, 제대로 된 업무처리보다는 계약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마인드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듯한 부동산 중개인의 실수를 잡아내고 고쳐내더라도 계약을 완료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와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부동산 사무실로 나온 임대인도 이상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내내 그는 별말이 없었다. 자신과 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할 만도 할 텐데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하는 말이라고는 이미 나에게 불성실한 사람으로 찍힌 자기 소유의 집을 관리해주는 부동산 중개인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아니라 내가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완전한 계약서를 완성하고, 임대차 계약을 완료했다. 사람들은 별로였지만 집 자체는 그나마 괜찮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신혼집 구하기가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입주 날짜가 적힌 완전한 계약서를 손에 쥐니 마음은 편해졌다. 우리의 신혼생활이 담길 신혼집이 정해졌다는 것, 그걸 대변해주는 계약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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