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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사건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우리의 첫 신혼집, 그 시작과 끝 vol.3

우리는 신혼집에서의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서로의 생활을 단칸방, 작은 공간에 효과적으로 녹여내며, 꽉 찬 일상을 살아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더위가 밀려오는 시즌이 되었다. 더 이상은 창문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는 느껴지는 후덥지근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에어컨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우리 부부가 입주하기 전부터 이 집의 한쪽 벽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바람도 잘 나왔고, 냉방도 잘 되었다. 그러나 에어컨을 가동하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여전히 시원한 바람을 뿜어내며, 잘 작동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한쪽 끝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처음에는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간격이 짧지 않아서 바닥에 수건을 받쳐놓았다. 하지만 점점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간격이 짧아지고, 그로 인해 바닥에 받쳐 둔 수건을 새 수건으로 갈아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우리의 선에서 견뎌내는 것이 버겁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신혼집을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연락을 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이 집을 계약할 때 부동산 중개를 한 중개인이기도 했다. 연락을 취하고 몇 시간 후 관리인이 우리 집에 왔다. 관리인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건물 밖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의 물 빠지는 호스를 찾아서 잡더니 여러 번 큰 숨으로 불었다. 이런 문제는 부지기수로 경험해 본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이어가던 관리인은 자기가 할 일을 다 끝마친 후, 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말하면서 그냥 가버렸다. 

그러나 관리인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에서 물 떨어지는 현상은 계속되었다. 다시 우리 집에 온 관리인은 이번에는 에어컨과 에어컨이 맞닿은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줄 두꺼운 헝겊을 에어컨과 벽 사이에 끼우더니, 이번 조치에도 문제가 계속되면 에어컨 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부부는 배게 위에 놓인 물받침 수건의 축축한 느낌과 물 떨어지는 소리로 인한 불편함을 계속해서 견뎌야 했다. 

에어컨 기사와 에어컨 점검을 하기로 한 날짜가 되었다. 에어컨 기사는 우리 집의 에어컨을 살펴보더니 에어컨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에어컨 작동 시에 발생하는 물이 자연스럽게 물 빠지는 호스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약간 비스듬하게, 경사가 지도록 에어컨을 설치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서 설치기사를 따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일간을 이 문제 때문에 불편했는데 계속해서 그것을 견뎌야 한다니 …, 맥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에어컨 기사는 출장비를 나에게 요구하였다. 당연히 임대인이나 관리인에게 받아야 할 돈인데 기사는 그 비용을 나에게 받으려고 했다. 나는 그 비용은 임대인이나 관리인에게 받는 것이 맞으니 그들에게 요구하라고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중에 알고 봤더니 관리인은 에어컨 기사에게 연락은 하였으나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세입자인 나와 에어컨 기사를 연결만 시켜놓고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놔둔 것이었다. 

관리인이나 임대인은 처음부터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집을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임대하기 전부터 미리미리 시설을 점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임대 후에 임대한 물건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최소한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확실하게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관리인과 임대인에게는 그런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미리 잘 점검했으면 세입자인 우리가 에어컨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았을 텐데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못 견디겠으면 비용 문제든, 다른 무엇이든 세입자가 알아서 해결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문제를 방관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관리인과 임대인이 해야 할 최소한의 기본은 하도록 조치하였다. 비록 에어컨 설치기사가 집에 와서 에어컨을 올바른 위치로 다시 설치할 때까지 계속해서 불편을 겪었지만 더 이상 비용의 처리와 기타 다른 사항들로 우리가 신경 쓰지 않도록 자신들이 할 일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다.   

1년짜리로 신혼집을 계약한 터라 재계약을 하지 않는 한, 사실상 여름이 지나가면 다시 설치한 이 집의 에어컨을 사용할 일은 우리 부부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더운 여름, 물이 새는 에어컨을 고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한번 쓰고 말 것(?) 때문에 수일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에어컨을 재설치하고 한참 지나서의 생각이지만 우리의 신혼집 에어컨 사건이 꼭 할 것은 안 해주고, 임대수익을 올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관자(?)들이 임차기간이 짧은 우리를 이용해서 집의 하자를 찾아내고 보수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덕분에 나중에 이 집에 들어올 세입자는 에어컨으로 인해 생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질 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관리인과 임대인의 형편없는 태도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들로부터는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몇 개월이 지나 우리가 신혼집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려고 할 때에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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