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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산책

[참된 깨달음 : 관람 후기] 구리 동구릉(東九陵)

휴일, 일어남에 기약 없이 푹 자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간단하게 채비를 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리니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음 정류장은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동구릉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왠지 반갑다. 두리번거리면서 이리저리 표지판 찾는 고생을 안 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버스 타고 오는 길에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이었지만 오후임에도 덥지도 않고, 끈적이지도 않은 산책하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기분 좋게 동구릉을 한 바퀴 돌기에는 좋은 날이었다.





동구릉 입구에 들어서니 동구릉에 대해 설명해주고, 관람하기 위한 코스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인 동구릉은 어떤 모습일까!'


잠깐 동안 기대를 품어본다.



동구릉 입구에 있는 홍살문이다. 홍살문은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을 엄숙히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홍살문에 대한 설명을 보지 않아도 동구릉 입구의 홍살문을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경건해진다. 그곳의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동구릉 중에서 처음으로 본 능은 수릉이다. 수릉은 조선의 24대 왕 헌종의 아버지인 추존왕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의 능이다. 수릉은 한 봉분 안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동구릉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조성된 수릉을 통해 앞으로 보게 될 능들의 구조물과 형태를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현릉이다. 현릉은 조선 제 5대 임금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현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園異岡陵)의 형태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문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건원릉으로 향하는 길이다. 우거진 수풀이 나의 눈을 편안하게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한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맑은 공기는 나의 기분을 산뜻하게 해준다.


건원릉으로 향하는 길 : 그 공간과 순간을 담아 보았다.





건원릉이다. 이 능의 형식은 단릉으로 병풍석을 두르고 있다.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고려 공민왕의 현릉(玄陵)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 왕릉에는 없던 곡장을 봉분 주위에 두르는 등 세부적으로 석물의 조형과 배치 면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건원릉을 보니, 봉분이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봉분의 위치로 조선왕조의 시조(始祖)라는 상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반 사람들이 쉽게 근접하지 못하도록 봉분을 조성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건원릉에서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 자체로 카리스마가 있었다.



목릉이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와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목릉은 같은 능역 안에 각각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園異岡陵)의 형식이다.



휘릉이다. 휘릉은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단릉 형식으로 봉분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난간석에는 십이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다.



원릉이다. 원릉은 조선 21대 영조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쌍릉의 형태이며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영조, 오른쪽(동쪽)이 정순왕후의 능이다.


원릉이 위치한 곳은 동구릉 중에서도 자리가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동구릉 전체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막혀있지 않았고 구석지게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52년 동안이나 재위하면서 조선 후기 상장례 과정을 정리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1758)을 편찬하도록 명했던 영조가 자신이 죽으면 이 자리에 묻히고자 미리 봐 둔 자리가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원릉의 정자각 내부 모습이다.



원릉의 능침 아래의 비각에는 총 3기의 표석이 건립되었다. 1비는 1776년 영조 승하 후에 세운 영종대왕 표석, 2비는 영조 추존 후 세운 영조대왕 표석, 3비는 1805년(순조 5)에 세운 정순왕후 표석이다. 사진은 일부만 올렸다.





경릉이다.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과 원비 효현황후 김씨, 계후 효정황후 홍씨의 능이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혜릉이다. 혜릉은 조선의 20대 왕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를 모신 단릉이다. 단의황후는 총명하고 덕을 갖추어 어린 나이에도 대왕대비와 병약한 경종(당시 세자)을 잘 보필하였다.


혜릉의 석물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의 명릉(明陵)의 제도를 따라 만들어져 문석인과 무석인이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실적인 묘사로 된 것이 특징이다.



숭릉이다.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숭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 형식이다.





동구릉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몇 군데 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걸었다. 꼭 산책을 하듯이~, 그러다가 벤치가 보이면 잠시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면서 능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동구릉 전체를 다 보고 나니,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왕릉 관람을 하였다기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수목원에서 삼림욕을 한 듯~, 마음은 편안했고, 기분은 상쾌하였다.



동구릉 입구에는 박물관이 있다.



조선왕릉의 역사를 담은 연도표이다.



동구릉 관람을 마치며 종합안내도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 동구릉 각 능의 해설을 위해 참고한 인터넷 사이트

구리 동구릉 : http://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1_01_01.jsp&mn=RT_01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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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깨달음 : 관람 후기] 구리 동구릉(東九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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