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면서 나스닥으로 가는 길
1465일 차 2025년 7월 6일
RIP 이상수 박사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특출 난 분들이 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경지에
이르렀고, 성격이 보통이 아니며,
어찌 보면 기인이기도 하다.
나와 같지 않은 인사들에게서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들과
교유하면서 알았다.
인생의 간접스승인 셈이다.
그중 한 분, 이상수 박사가
어제저녁 별세했다.
시애틀에서 서울로 가는 나를
타코마 공항까지 바래다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게 지난주
목요일 새벽이다.
당신이 매일 산책하고 운동하는
공원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새 단장했다며 SNS로 대화한 게 어제 아침이다.
바로 다음날 새벽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1952년생 향년 73, 요즘에는
너무도 젊은 나이다.
경주에서 농사를 짓던 집안의
8남매 중 하나인 고인은
그 지역의 수재다.
고교 동기동창 중 서울대에
입학한 유일한 인물이다.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두산그룹에서 일했다.
해양학 박사인 그는 인천국제공항
건립 전 환경생태조사를 책임졌다.
한국의 대형 토목공사 중 상당수가 그
의 사전 수질영향 평가결과를
초조히 기다렸다.
미국으로 이민한 이 박사는
두 딸을 현지 주류사회의
엘리트로 키워냈다.
먹고 싶은 것 참고 여행도
안 다니며 자녀와 가정에 헌신한
앞 세대 한국의 아버지다.
본인은 외로웠다.
한국에서는 사계의 정상을 달렸다.
그러나 은퇴한 이민자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생전 고인은 만시지탄을 털어놓았다.
후세대인 내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다.
시애틀에서 100여 일을 지내면서
훗날 박사님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길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그 훗날이 20년 뒤가 아니라 당장이 되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시애틀에서 공항으로 가는
승용차에서 이 박사가 흘리듯 말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요지의 그 말씀이 귓속을 맴돈다.
이상수 박사님,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