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조금 포함될 수 있습니다.
2003년에 데뷔해 귀여운 외모로 일본 본토에서 '열도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배우가 있었다.
'카호'가 그 주인공이다.
애석하다고(?) 해야 할까, 나이가 들어 귀여운 외모가 사라진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카호는 역변의 아이콘으로만 남아있다.
뭐, 그래도 그 덕인지 이제는 어엿한 연기자로,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매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다행인 건가?
산과 밭으로 둘러 쌓인 시골마을. 초, 중학생 모두 합쳐 6명뿐인 분교에서 중학교 2학년생 미기타 소요(카호)는 유일한 상급생으로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언제나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로부터 잘생기고 멋진 오오사와 히로미(오카다 마사키)가 전학을 온다.
처음으로 생긴 동급생과의 즐거운 하루하루를 꿈꾸던 소요. 하지만 생각보다 히로미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서로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 달콤한 첫사랑에 빠지게 된 그들. 천진난만 귀여운 동갑내기 커플 소요와 히로미는 마을 아이들과 가족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풋풋한 사춘기를 보낸다. 그러나 히로미가 도쿄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하면서 소요의 가슴앓이가 시작되는데… 과연 이 귀여운 동갑내기 커플은 첫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시놉시스만 보면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슴 졸이게 만드는 첫사랑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겠다. 오히려 영화는 주인공 둘 간의 첫사랑을 싱거우리만큼 단순하게 표현하고, 정작 카메라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명료한 컷으로만 감정을 '간단하게' 전달할 뿐, 소요(카호)와 히로미(마사키)의 감정이 씬내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영화 내에서 부각되는 것이 있다면, 소요가 여러 사건을 접할 때마다 알쏭달쏭 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계속 담아낸다는 것 정도?
사실, 그 알쏭달쏭 한 표정의 근본적 원인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고민하고 가슴 졸여 한다는 데 있다. 사춘기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는 그저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개성이나 자아를 표출해내는, 정리되지 못한 엉망진창의 모습에 더 가깝겠지만,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서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새로운 경험에 대처가 부족한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에 시선을 두고 있다. 소요가 고민을 하거나 접하게 되는 사건들 모두 당연하게도 소요에게는 새로운 경험일 테니.
소요에게는 '도시'가 그 중 하나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소요의 첫사랑인 히로미는 '도시'의 매개 또는 도시를 대신하는 '장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소녀가 처음 좋아하게 된 소년은 도시에서 왔지만, 정작 소녀는 생전 도시를 접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소년을 향한 묘한 동경이 느껴진다. 영화 초반은 이 '동경'에 주로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과연 소녀가 정말 소년을 좋아해서 하는 동경인 것인지 도시를 향한 동경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의 장면 대부분이 그에 대한 설명이 묘하다 싶을 만큼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나마 알 수 있을 법한 부분들은 소요가 히로미의 도시스러운 옷들에 관심을 가지거나 할 때이다. 옷 얘기를 할 때 만큼은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 하는 소요의 모습이 과연 히로미보다는 그 쪽(도시의 물건)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교실 칠판에 키스를 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소요의 모습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영화 내내 첫사랑이 싱겁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이 정작 둘 간의 애틋한 사랑이 아닌 '마을'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요와 히로미 그리고 선생님들과 도쿄로 갔던 수학여행에서, 소요는 줄곧 어지러워 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요는 나지막히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아마 도시에서의 순간이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이 순박한 시골소녀가 생경해하는 모습과 교실에서의 고백을 통해 현재 자신이 속한 고향을(시골) 사랑하고 있었음을 시인한다. 소녀가 사랑한 것은 첫사랑 상대가 아닌 그저 그속(시골)에서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 반면 히로미는 본인의 고향에 그다지 정이 없는 듯하다. 친구들이 기념으로 준 전 학교의 벽돌을 그냥 버리고 가려는 히로미의 모습을 보고 소요는 가만히 있질 못 한다. 사뭇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소요에게서 고향을 사랑하지 못하는 히로미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히로미가 고향에 정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고등학교 진학을 도쿄로 정한 걸 보면, 히로미는 단지 도쿄를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소요에게 있어 도쿄는 큰 결심이 필요한 곳이니.
영화에서 비치는 '서툴다'에 가까운 장면들은 우리 모두가 사춘기 시절에 겪어 온 쑥스러운 기억들일 것이다. 마을 아이들과 작은 갈등 때문에 울게 되는 소요의 모습을 통해서, 그걸 위로해 주며 갈등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는 아이들 속에서, 그리고 사귀게 된다면 꼭 키스를 해야 한다는 첫사랑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꼭 학교 안 가고, 어른들 말씀 안 들어야 사춘기인 건 아닌 것이다. 우리는 평범했고, 관계에 있어 서툴렀고, 그렇게 나이 들어왔다. 영화는 그 순수했던 모습에 명쾌하리 만큼 뚜렷하게 시선을 두고 있다. 장면에 직접적인 감정을 투영시키기보다는 자연스레 겪는 일이라는 듯이 그저 흘러가듯 장면을 나열했다. 이 순수한 감정은 이렇다 할 설명을 덧붙이는 장면 없이도, 그때그때 짓는 소요의 표정만으로도 다 느껴질 수 있었다.
마을을 향한 사랑은 인서트 컷에서도 알 수 있다. 인서트 컷 중 대부분은 마을의 적적한 풍경이었으니...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골과 도시의 인서트 컷은 각각 햇살과 먹구름 정도로 구분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단순하지만 이런 명확한 장면들이 좋다. 오히려 과하리만큼 기교로 점철된 영화들 보다야 알기 쉬워서 좋달까.
카호가 아니면 이 역할을 누가 했을까 싶을 만큼, 카호의 엉뚱하고 귀여운 표정이 좋았던 영화이다. 정말이지, 괜히 열도의 기적이라는 이상한 별명을 붙인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 오카다 마사키의 풋풋한 어린 시절 모습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