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조금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 너로 정했다!'가 나온 지 정확히 1년 하고도 2일 만에 후속편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쯤 군대 휴가 나와서 한량처럼 뒹굴뒹굴 댈 때 vod로 너로 정했다를 봤었는데... 재미도 없고, 아쉬웠다. 무인 편을 보던 97년도 세대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싶었던 건지 리부트 한다는 느낌은 있었다만(정작 본인들은 리부트가 아니었는지 그런 내용의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신세대들도 잡고 싶은 욕심 때문에 분위기가 난잡했다.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본편의 스토리에 오리지널까지 곁들이려니 묘하게 아쉬웠달까. TVA건 극장판이건 최초로 스크린에 출연한 칠색조가 무색해지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번 '포켓몬스터 : 모두의 이야기'도 전작인 너로 정했다 와 괘는 같다. 주 시청층인 어린이들을 공략함과 동시에 극장에 애들 데리고 오는 1세대 무인편 엄빠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전작과의 차이점이라면, 이번엔 전작의 난잡함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는지 1, 2세대의 포켓몬들만 부각되었다는 것. 여태껏 티비 시리즈건 극장판이건 잘 나오지도 않던 마기라스가 에피소드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니.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설정 또한 전편의 것보다야 좋았다. 캐릭터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극에 몰입하게 하는 여전히 좋은 방법이다. 그게 신파 요소라 할지언정 말이지.
포켓몬스터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지우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떠한 사건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이 지우였다. 주인공이니 당연한 거지만, 세대가 거듭될수록 바뀌지 않는 포맷은 그 흔한 포덕들도 지겹게 할 만큼 재미없는 요소다. 그나마 극장판은 그런 요소가 덜 했다만, 극장판은 게임기로 배포하는 포켓몬이 주된 목적이거나, 그 세대의 게임 홍보 효과를 위한 광고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정도? 그나마 재미있었던 작품은 DP시절에 나온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 정도였다. 그저 치고받고 싸우는 게 역시 재밌는 거지.
함께라면 두려울 것 없는
우리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바람 축제에 온 지우와 피카츄.
이브이를 찾는 리사와 새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하던 중,
갑자기 모든 바람이 사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가 마을을 뒤덮는다.
사람과 포켓몬 모두가 위험해질 위기가 찾아오자,
바람을 되찾기 위해
지우와 피카츄, 리사와 이브이, 라르고, 카가치, 히스이, 토리토의
모두가 함께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게임과는 별개로 무인편과 AG편을 제외하면 그다지 후한 점수도 줄 수 없는 포켓몬스터 시리즈... 그럼에도 이렇게 감상문을 끄적이는 이유는, 보다 보니 설령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 해도 역시 작가는 작가인가 보다 하며 느낀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리지널 캐릭터인 '리사'의 등교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눈치를 챘다고 해야 할까 부제부터 모두의 이야기다. 포덕들은 전작의 낚시 때문인지 이런 부제부터 보면 '아, 내 얘기인가?'하고 느낄 터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모두'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지우가 아닌 그 모두에 초점을 둔다. 조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거짓말만 늘어놓는 삼촌의 이야기, 전설의 포켓몬을 지키기 위해 사고를 치는 시장의 딸 이야기, 누구보다 포켓몬을 좋아하지만 사람들한테 자기주장도 못하고 우물쭈물 소심한 연구원의 이야기, 옛 화재사건 때문에 아끼던 포켓몬을 잃은 할머니의 이야기, 다리를 다친 육상 선수가 포켓몬에게 감명받고 다시 달리는 이야기(?) 등. 지우는 GET레이스 라는 포켓몬 잡기 대회 참여 장면 외엔 뭐 했나 싶을 정도로 잘 나오지도 않는다.
이번 작은 특이하게도 전작들과는 다르게 여기가 어디 지방인지도 알 수 없다. 순전히 오리지널 에피소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지우의 포켓몬은 피카츄 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기에 목적을 둔 영화답게 그런 자잘한 고증 따위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 여태 보여주었던 작품들은 어떤 포켓몬이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에는 한 아이가 연관되어 있고, 그 아이와 그 포켓몬이 만나 오해나 불화를 '지우가' 해결하고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 영화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작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캐릭터들과 포켓몬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모습 그 자체에 주목한다. 덕분에 여태 보여주던 소모적인 캐릭터 패턴은 이 편에 이르러서야 조금 완화된다.
첫 장편 극장판이었던 '뮤츠의 역습'은 포켓몬스터의 밝은 분위기 하나 없는 꽤나 진중한 이야기였다. 뮤츠가 했던 '나는 왜 태어난 거지?'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포켓몬이 왜 싸워야 하고 왜 인간들에게 잡혀 살아야 하는 것인지 포켓몬 스스로 반문을 던진 처음이자 마지막 극장판이었기에 지금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작은 다른 의미로 무거운 분위기의 진중한 이야기이다. 극중 지우는 다리가 아파서 못 뛰게 되었다던 리사에게 '혼자 하면 안 되는 일도 포켓몬과 함께하면 왠지 될 것 같거든!'라는 낡아빠진 명언을 던진다. 여태껏 지우는 한결같이 이런 소리를 지껄여왔지만, 포켓몬도 피카츄밖에 없는 극 중의 지우가 왜 '포켓몬과 함께라면'이라는 말을 했을까?
영화는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을 추억하려 한다. 게임보이를 들고 포켓몬과 '함께' 돌아다니던 그 시절을 추억하려는 것이다. 1, 2세대의 포켓몬만 보여주던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닌텐도가 아닌, 게임보이 세대들과 무인편을 보던 당시 세대들을 추억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지우가 던진 저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지만, 당시 친구와 포켓몬 교환만 해도 서로 즐거워했던 이들을 추억하려는 시도라 여겨진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함께 즐겨왔던 것들을 잊는 나이가 된 우리가, 그 시절의 것들을 추억함으로 인해 잠시나마 꼬마감성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닐까 싶다. 극중 인물들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기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에 비루한 사연들로 엮인 이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와 별다를 바 없지만, 즐거운 이들과 함께라면 다 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극중 시장의 딸이 제라오라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포켓몬과 함께라면 힘이 솟아나는데, 반대도 그럴까? 포켓몬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 '뮤츠의 역습'에서 왜 자신들이 태어났을까라는 뮤츠의 질문에 피카츄 챙기느라 제대로 대답도 못했던 지우 대신, 오리지널 캐릭터의 이 대사가 그 대답에 적절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오는 루기아가 반가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