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스포일러가 조금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한 때 미술을 전공했어서 그런 건지 영화를 볼 때 매 장면을 그림 정도로 구분하고 있다. 이 장면은 어떻게 그렸을까, 저 장면은 어떻게 그렸을까 하면서. 카메라로 표현하기가 쉬울까, 아니면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쉬울까. 매번 생각해보는 질문이지만,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사실,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쉽고 어렵고의 문제는 아니다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에서는 그런 '그려낸 듯한' 장면들이 몇 가지 있었다. 혼란스러운 듯 심각한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얼굴에 미소 짓는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반사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찬가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도 좋은 구도며, 색, 빛 등 한 가지로 특정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림 같은 장면들이 많다.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 출처 : 네이버 영화
굳은 표정으로 마트 앞에 서있는 쇼타(죠 카이리)의 모습과, 마지막에 비슷한 표정으로 아파트 난간 건너를 바라보는 유리(사사키 미유)의 모습은 이 이야기의 매개가 누군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전 작들과 비슷하다. 실수로 바뀐 아이를 다시 바꿔 키우는 부모라든가(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돌아오지 않는 부모라든가(아무도 모른다),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엄마와 아빠가 다시 합치기를 바라는 아이(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같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상처 입기를 반복하다 회복하는 식의 묘사가 주를 이룬다. <어느 가족>에서는 이미 누군가에게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타인을 통해서 회복하는 과정을 그려내다 결말에 이르러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아키(마츠오카 마유) 또한 설정이 가출한 청소년일 뿐 쇼타와 유리와 비슷한 처지나 다름없다.
영화를 보다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대개 슬픈 장면 때문이지만, 그저 진실한 것 같은 연기와 멋진 장면으로도 슬픈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위의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노부요(안도 사쿠라)가 유리의 옷을 불에 던지며 유리를 꼭 껴안고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그리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이 이 둘의 얼굴에 반사될 때, 이 간단한 연기와 그림 같은 연출이 더해져 따뜻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들의 뒤엔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한 공간 안에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다. 간단하지만 깊고 따뜻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어째서인지 이상한(?) 연기밖에 기억이 안 나서 처음엔 괴리감이 심했지만(아마 소노 시온 감독의 <러브 익스포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족>에서의 안도 사쿠라는 노부요 그 자체를 연기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감명 깊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또는 그림자 속에서) 있는 경우는 없다. 아파트 난간 사이의 좁은 틈으로 바깥을 보던 유리도 조그마한 실외 등이 아이를 은은히 비추고 있다. 후에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전히 아파트 난간 안에서 혼자 쓸쓸히 놀고 있는 와중에도 햇빛이 아이를 비춘다. 이 후엔 아이가 난간 틈이 아닌 난간 너머로 바깥을 보게 되니, 결과적으로 아이가 성장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하츠에(키키 키린)가 죽고 난 뒤, 조금씩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이들 사이에서 쇼타는 갈피를 못 잡는 듯 계속 정체되어있는 모습이다. 가족이 자신을 구하려던 건 단지 '훔친 것'이 아닌 진짜 구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그런 말과는 다르게 점점 방향을 잃어가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의 모습에 실망이라도 한 듯, 뛰어가던 오사무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사무와 둘이서 가던 마트에 홀로 도둑질을 하다 잡히기까지(유리가 도둑질을 하는 게 싫어 시선을 끄는 행동이었지만), 가족의 정체성과 방향은 이미 그 길을 잃어 쇼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게 만든다. 본인 말로는 일부러 붙잡혔다지만, 이미 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대로 몰려 아이들까지 다시 상처 입게 만든다. 이와 중에도 야반도주를 꾸미는 모습을 미루어 보아 이미 그 정체성은 하츠에와 함께 바닥에 묻혀버렸다.
가출 청소년 아키가 상처 받은 이유는 극 중에서 정확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키는 단지 하츠에가 같이 살자는 말에 정말 같이 지냈을 뿐, 그녀에게서 어떠한 의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4번 손님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나지막이 어릴 적을 회상하며 그립다는 듯 말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후에 경찰의 신문에서는 마치 가족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했던 것 마냥 하츠에의 배신에 힘들어하는 모습만 남는다. 아키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모에게는 비밀로 하고 접대부를 하는 등 방황하는 인물에 가깝지만, 아키가 자신의 가명을 사야카(동생의 이름)로 정한 것을 보면, 진짜 가족에 애정은 없어 보인다. 그와 반대로 하츠에가 아키를 데려온 것도 자신의 남편을 뺏어간(또는 훔쳐간) 이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뺏으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획적이었달까.
마지막에 혼자 쓸쓸히 집을 찾아와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는 집. 자신이 믿었던 것들은 결국 허상처럼 없어질 일이었울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밝은 방 안에서 엉겨 붙어살던 이들의 모습과는 반대로 위험하다는 듯 어두컴컴하던 바깥의 모습은, 집이 어두컴컴해지고 바깥이 밝아진 장면으로 역전되어 남게 된다. 아마 아키가 문을 열고 본 텅 빈 집안이 아키가 마주하지 못했던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보기 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를 보았다. 카메오로 나온 쿠엔틴 타란티노의 모습이 괜히 아른거려서 영화에 집중이 안 되기는 했지만…. 정말 좋은 영화 한 편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파게티 웨스턴과 스키야키 웨스턴 둘 중 고르라면 거두절미하고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아무튼, 앞으로도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