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조금 포함될 수 있습니다.
벌써 몇 년째 이런 영화를 혼자서 섭취 중이다. 약간 비꼬는 투가 되는 건 역시 이유가 있다(...). 예전하고 다르게 최근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작품성 가려가며 비평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비타민제 같달까. 올해 처음 본 영화마저도 혼다 츠바사가 주인공이었던 '아오하라이드'라는 첫사랑 영화였다. 흠...
최근 의도치 않은 경조사가 많았다. 공통점이라면 정말 예상치 못해서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는 점. 경조사라는 것이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만은,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는 점. 뭔가 더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축하해주든 위로해주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있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아마 점점 이런 일도 많아지리라.
기억하나요? 당신의 첫사랑
고3 여름, 전학생 ‘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연’(김영광).
승희를 졸졸 쫓아다닌 끝에 마침내 공식커플로 거듭나려던 그때!
잘 지내라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승희는 사라져버리고,
우연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1년 뒤, 승희의 흔적을 쫓아 끈질긴 노력으로 같은 대학에 합격한 우연.
그런데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예술로 빗나가는 타이밍 속
다사다난한 그들의 첫사랑 연대기는 계속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일단 첫인상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중학생 때 쓴 망상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 전이나, 시험공부 중에 뜬금없이 할 법한 그런 상상들. 그 왜, 그 뭐든지 너무 순조롭게 풀려가는 그런 이야기들. 나는 주로 내가 날아다니거나 순간 이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상을 많이 했다. 아마 대통령이 날 끌고 와 캡틴 아메리카처럼 군대에 집어넣지는 않을까 같은 희한한 스토리였다. 그런 이야기들이 이 영화의 플롯 방식이다. 너무 순조롭고, 위기마저도 순조롭고, 작별마저도 순조롭다. 장면마다 고민이라고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정말 가벼운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이름마저도 이 순조로운 이야기를 위해 소모되는 느낌. 중간중간 급전개가 된다 싶을 때마다 집어넣는 플래시백마저도 순조롭다. 순조롭다는 말 외에 이야기를 더 설명할 방법은 모르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관람 타깃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서 이해하기는 쉽다는 것이다. 영화가 심각하지 않으니 나도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화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봐야 나만 피곤한 일이니. 사실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닌지라, 그 나름 디테일한 몇 가지 부분들이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좋아하는 여성의 생일로 해놓는다든지 하는 그런 희한한 디테일들은 사춘기 시절쯤이면 한 번쯤 해봤던 것들 아닌가. 이런 희한한 디테일들은 이미 '건축학개론'에서 봐왔던 모습이다. 둘 다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황우연(김영광)이라는 인물의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건축학개론>이 여태껏 잊고 지내던 사람을 다시 끄집어내 서로의 진심을 ‘추억’하는 이야기라면,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 덕분에 서로가 ‘성장’했다 라는 이야기다. 황우연이 환승희(박보영)을 넋 놓고 쳐다보는 몇몇 장면에서 그런 감정들이 전달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황우연이라는 인물이 환승희를 만나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면,
1. 환승희가 시키는 대로 다른 친구들과 싸우지 않기
2. 환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기
3. 환승희의 남자친구를 떼어내기 위해 미식축구팀에 들기(킥을 하는 것으로 봐서 럭비가 아니라 미식축구다) - 결국엔 두들겨 패는 걸로 끝난다만...
4. 환승희와 만나기 위해 있던 여자친구 내팽개치기(?)
황우연이 하는 행동 대부분의 원인은 환승희이다. 그리고 환승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한다. 그의 인생에서 환승희가 떠나있을 때는 언제나 방황(영화가 치킨집 알바와 헬스장 전단지 알바를 왜 방황이라고 표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가 주위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어떻게든 그녀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순애보 그 자체다. 그녀가 곁에 있는 순간엔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습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점점 나약해져 간다. 자꾸 떨어지는 임용고시에 지친 그는 환승희를 만난 걸 후회한다는 투의 말을 한다. 사실,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단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유의 고민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런 유의 이야기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로 남을 뿐이지만. 그러나 공감이 되는 것은 그 뿐이고, 이러한 전개마저 사실 황우연이 다시 환승희와 멀어지기 위한 소모적인 장면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점과 그 장면이 너무 급한 전개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마지막까지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순조로움이 아쉽다.
마지막 즈음 신부대기실에서 황우연이 환승희에게 했던 말로 미루어보아, 환승희는 황우연에게 건설적인 삶의 이유였음을 알 수 있다. 여태 일어난 일들이 그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황우연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것을 굳이 픽션으로 치부하기 전에,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이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무언가 노력하던 모습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 한 편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순간이 있어주어 감사함을 알게되는 바이니.
황우연이 첫사랑으로 인해 지금까지 성장한 모습은 대견하기 짝이 없다. 체육교사라니... 얼마나 현실적인가?! 유학파와 결혼한다는 환승희의 모습도 얼마나 현실적인가?! 아무튼, 서로의 삶에 있어주어서 고맙다는 악수로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진정 '어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