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쏟아진 물은 절. 대.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건 다들, 안다.
물론, 담아볼 순 있을지 모른다.
행주로 물기를 훔쳐내서 원래 담겨 있던 그릇에 쭈욱 짜내듯?
또는, 물을 쏟은 자리가 식탁이었다면 손으로 모아서 담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들 알지 않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째든 행주로 짜낸 물이나 식탁에 쏟은 물이나, 이미 순수한 원래의 물은 아닐 것이다.
이 지랄 맞은 삶을 살아가면서 부단히 많은 연습들을 시도했던 것 같다.
그중에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하고, 받아들이는 것.
무엇보다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아가는 자세에 대한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는 혼돈의 카오스였다.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짓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망쳐 놨을까?
되뇌면서 머리를 하루 종일 쥐어뜯었더랬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의 어리석음에 한탄했다.
결국 나는 먼지보다 더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그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순간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해결을 해 줄 수 있게 되는지.
사실 그로 인한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허망한 시간만이 지나가 버릴 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루 종일 '왜 그랬을까?'라고 반복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 어떤 일도 나에게 일어나게 하진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잘못된 일이 벌어졌을 때, 잘못을 깨닫는 시간은 일순간이면 되었다.
빠르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게 되었다.
자책하려는 마음과 불안정한 감정을 누르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 방법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안함이나 두려움 등의 불안정한 감정들에 짓눌려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심호흡이 필요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좀 더 냉정한 기분이 되어 '일단은 해결하자.'라는 쪽으로 생각이 전환되었다.
제삼자의 입장과도 같은 현재의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어진 일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서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나누고, 할 수 있는 일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 할 수 없는 일은 내가 어떤 잘못을 했을 경우, 상대의 입장에 대한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해결하여도 상대의 기분에 부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이런 감각을 계속 반복적으로 익히게 되면, 어느 순간 그런 식의 반응처리가 나를 습관화하게 하고, 그것은 좀 더 이성적인 상태로 (또는 감정이 결여된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전환되게 된다.
심장박동이 날갯짓을 하던 불안정한 나의 감정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괴로움이란 망망대해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더 나은 일이 되지는 않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