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자 하는 나의 세계관 (4)

#4 이혼은 끝이 아니라 워밍업

by 오묘

아직 이혼은 하지 않았다.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합의이혼은 '신청' 자체는 어렵지 않다는데,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단다. 다른 방법은 없단다.

서로 하는 일이 있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아이들의 양육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구구절절 서로의 민낮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예민한 이야기가 되었다.

누가 더 가져가느냐, 나는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였다.

결국 양육비에 대한 문제는 아이들이 커가는 문제와 각자의 경제 상황에 따라 이혼이 확정 되기 전까지 서로 상황에 맞게 합의를 하고 공증하기로 했다.


아이 둘은 내가 키우기로 했고, 언제는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난 아이들에게 '아빠'란 존재를 뺏기 위해 이혼하는 것이 아니었고, 아이들도 언제든 보고 싶을 때 '아빠'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길 바랐다.

아직 남아있는 할부금들과 대출금들은 내가 끌어안고 가기로 했다.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 진흙탕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진흙탕 싸움을 해서 기껏 기십만 원 더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여태 내가 부자가 되지 못했나 보다.

또한 나로선 엄마에게 위탁해서 살 수 있는 방편이 있지만, 그는 당장의 보증금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헛헛했다.

남은 것이 그리 없었냐들 할 테지만, 정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번듯해 보이는 것들이 다 대출과 이어져 있었고, 둘 다 한 달을 잘 버텨내도 손안에 쥐어지는 현금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 하는 화장실 한 칸만 내 것. 내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대출 원금과 이자를 상납하는 인생의 절반을 이제는 청산하고 싶었다.

살던 집을 아예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려 진작부터 친정에 위탁해 살고 있었기에, 당분간은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대출을 끼지 않고 월세나 전세로 가는 방향으로 밑바닥부터 인생의 기초공사를 다시 다져보기로 했다.

적게나마 순수하게 내가 마음 편히 써볼 수 있는 현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가 되었을 때의 가정하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 기대 사는 삶은 결국 맞추어야 하기에 무엇도 내가 결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아닐까.


그냥 뭐든 해서 이번엔 내가 ‘알아서’ 살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것은 '경제적인 자유로움'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알아서’ 살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많아진다.

없이 살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난 이리 말하겠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세상이에요.'


적어도 난, 두 아이들의 엄마로서 이루어야 할 '의무'와 내가 누리고 싶은 '자유로움'에,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저당 잡힌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님을 알았기에, 이번엔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히 그리고 차근히 남은 인생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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