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실을 말한다고 할 때 그 사실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생각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람마다 생각의 방향과 결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한다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와 나는 모녀지간이지만 참 안 맞아. 가족이 아니라면 친하게 어울리는 사이가 되지 못했을 거야.’
-오늘 아침 첫 번째 대화
5시 30분에 일어나 어제 퇴근길에 들고 온 업무를 처리하고 밀린 설거지를 마친 후에 엄마 아침을 준비했다. 국을 데우고 밥을 뜨고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 놓으니 식탁이 꽉 찼다.
동생 먹을 아침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서 시계를 봤다. 7시 50분이다. 지각하지 않을까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양배추 삶은 것도 좀 꺼내 줄래. 다 먹어 버리게.”
양배추가 얼마 안 남았으니 다 먹어야겠다는 말로 이해한 나는 “엄마, 아직 많이 남아서 지금 다 드실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분(요양 보호사)이 많이 삶아서 그래. 절반 정도만 삶으면 되는데.”
“절반만 삶아달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아파서 누워 있느라 얘기 못 했지.”
엄마의 말에 요양 간호사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 나는 “그분이 밥이랑 반찬 해 주는 게 어디예요. 고마운 일이죠.”
“네가 양배추 많이 삶았다고 하니까 그렇게 말한 거야.”
나는 엄마가 다 드신다고 해서 한 번에 먹기에는 양이 많다고 한 건데 엄마는 왜 이렇게 많이 삶았냐는 뜻으로 들으셨나 보다.
-오늘 아침 두 번째 대화
출근하기 전 안방에 있는 변기 의자의 변기통을 급하게 비우는데 엄마가 “늦었는데 놔두고 가. 이따 선생님(요양보호사) 오시면 버려 달라고 하면 돼.”라고 하셨다.
그분이 오자마자 버려주면 좋은데 일 끝나고 갈 때 변기통을 비워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버리고 가는 거라는 내 말에 “난 그냥 그렇다는 사실을 말한 거야.”라고 답하시는 엄마.
내가 듣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인 걸까.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엄마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압박감이 나를 짓누른다.
엄마의 말에 대해 나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걸까.
첫째, 엄마가 말한 사실에 담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방법은 힘이 들고 지치고 스트레스가 누적된다는 단점이 뒤따른다.
둘째, 엄마의 말에 담긴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한다. 이렇게 하면 몸이 힘들지는 않지만 엄마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라 짐작된다. 내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각자 듣고 싶은 대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