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약 하나가 부족해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 저번에 네가 담에 와서 받으면 된다고 안 받아 온 약 말이다.”
엄마는 세 달에 한 번 안과에 가서 백내장과 녹내장 약을 처방받아 오는데 오늘 아침 약을 정리하다가 백내장 약 하나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셨다.
“엄마, 그때 병원에서 그 약만 재고가 부족해서 나중에 받으러 오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했잖아요. 생각 안 나세요?”
“그랬나? 기억이 안 나네.”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복잡한 세상, 모든 일을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거 참 이상하네. 예전에는 병원에 가도 한 번도 약 없다고 못 받아 온 적이 없는데. 무슨 약이 떨어졌는지 잘 살펴서 채워 놔야지 그 병원에서 일을 잘 못하네.”
눈썹이 휘날릴 틈도 없을 정도로 바쁜 아침, 엄마의 얘기를 듣다 보면 벽 하나가 엄마와 나 사이에 세워져 있는 듯 답답함을 느낀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일 텐데 오랜 시간 동안 엄마 뒷바라지를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말도 다 스트레스가 된다.
약을 적게 타 온 게 내 탓인 양 말씀하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아니, 엄마는 내 탓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약이 없다는 의미로 얘기한 건데 내가 삐딱하게 들은 걸 수도 있다.
내가 엄마에게 기대했던 말은 “그랬니? 깜빡 잊어버렸네.” 딱 여기까지이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밀린 설거지와 집안 정리, 엄마와 동생 식사 챙기느라 출근 준비도 제대로 못해 스트레스받는 나는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안에 점점 화가 쌓이다 보니 작고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고 만다. 내 처지를 아는 지인 중 몇 분은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도 받고 약도 처방받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가끔 차 안에서, 내 방에서 괴성을 지르는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답답하기도 하다. 내가 속이 좁아서 엄마를 이해 못 하고 못되게 구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