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오랑우탄이 되는 게 아닐까

by 비니
우리가 오랑우탄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가장 발전한 게 소통능력이라던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는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
-‘겨우, 서른’ 2화 중에서-


가족은 힘들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내 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가족을 돌봐야 할 때이다. 나와 맞지 않는 가족을 돌볼 때 마음의 상처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팔십이 넘으신 엄마와 장애가 있는 막내 동생의 간병을 혼자 하면서 내 속은 점점 곪아가고 있다. 간병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아픈 데다가 심리적인 압박감이 심해지는데 엄마는 오로지 동생 걱정뿐이다. 엄마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할 때가 있다. 게다가 엄마와 모든 면에서 맞지 않아서인지 생각의 방향이 너무 달라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딸이 있다. 엄마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딸과 엄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딸. 불행히도 나는 후자이다. 엄마는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끝까지 강하게 주장하는 편이고 오랫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셨기 때문에 집에서의 주도권은 엄마에게 있었다. 예전의 나는 집에 오면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엄마가 하는 일에 불만이 있을 때도 그냥 넘어가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집안일을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내 결정이나 행동에 자꾸 조언(이라고 쓰고 간섭이라고 읽는다.)을 하신다는 거다.


사람마다 자기 스타일대로 일하기 마련인데 엄마는 자꾸 엄마의 방식대로 하기를 요구하신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말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참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는데 이때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면 엄마는 이런 내 태도에 서운함을 느끼며 엄마의 처지를 한탄하고 그러면 나는 또 엄마의 푸념을 들으며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진다. 내 고생에 대해 알아 달라고 하소연하면 그 순간 고생은 공치사가 돼버려 자괴감에 빠지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되도록이면 엄마와의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내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불만과 상처가 쌓여 있으니 대화 자체가 잘 성립되지 않는 거다.


고령으로 여기저기 아픈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 드실 것을 사 오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 보니(요양 간호사가 평일에 오기는 하지만 아침 출근 전과 퇴근 후, 주말은 내가 다 해야 한다.) 누적된 피곤과 밀려오는 우울감에 웃음을 점점 잃어간다.


한 때 나는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한 착각이었다. 이제는 되도록 엄마와 소통하지 않는 편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돼버렸다.


나의 소통 능력은 날마다 조금씩 퇴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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