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미식가

by 비니


며칠 전, 근무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미안한데 이따 오면서 삼계탕 좀 사다 줄래”

엄마가 가끔 드시는 집 근처 식당의 삼계탕을 사 오라는 전화였다. 오 분 후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저기, 힘들겠지만 삼계탕 하나 말고 두 개로 사다 줘. 막내도 갈아서 주게.”



‘미식가’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네이버 사전)’이다.


엄마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손꼽을 정도의 미식가이다. 먹고 싶은 음식과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많다.


나도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입고 싶은 옷이 있어서 사러 가는 일은 많아도 먹고 싶은 음식이나 디저트를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좀 달라지긴 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간병과 코로나 영향으로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거나 조용히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쉽게 누릴 수 있는 힐링의 방법이 되었으니까 말이다.(식사 준비에 스트레스받으면서 먹는 걸로 힐링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미식가인 엄마를 돌보는 일은 정말 어렵다. 식재료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엄마의 끊임없는 요구 사항을 해결하려면 시간과 비용과 노력과 체력의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장을 보는 스타일인데 엄마는 음식 만들 식재료가 충분히 있을 때에도 구입해야 할 리스트가 줄줄이 나온다. 사과를 사면 바나나가 먹고 싶고, 바나나를 사 오면 참외가 당긴다는 우리 엄마.



어느 날 퇴근하고 왔더니 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요양 보호사 선생님이 한 말을 전했다.


“어르신은 먹을 게 없어서 못 드시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다 못 드시겠어요. 직장 다니면서 이거 다 준비하려면 따님이 참 힘드실 것 같아요.”

그날, 내 어려움과 고충을 알아준 그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엄마는 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신다. 나도 엄마의 힘든 정도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고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취향과 가치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그중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기를 주장한다면 갈등이 커지게 된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준비해서 맛있게 드시는 거 보면 뿌듯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틈틈이 잘 드시는 간식도 사다 나른다. 아무리 배 고파도 엄마 식사 먼저 차려 드리고 동생 챙기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식욕이 사라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간병에서 가장 힘든 점 하나를 꼽으라면 날마다 식사를 챙기는 일이다. 게다가 나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퇴직 후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던 지인이 퇴직한 남편의 식사를 매일 챙기면서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지인은 요리를 잘하는 분인데도 말이다. 나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긴 요리를 잘한다고 매일 음식 만드는 게 즐겁지는 않을 거다. 나 혼자라면 대충 때우겠지만 엄마와 동생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토요일, 새벽 6시쯤 잠에서 깼다. 전날 두 군데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해서 새벽에 배송된 각종 먹거리들을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이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새벽 배송으로 온 즉석으로 끓여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를 냄비에 담고 있는데 엄마가 식탁에 앉으며 “김치찌개는 집에 직접 끓인 게 맛있는데.”라고 하신다. 내가 먹을 거라고 하니 엄마는 어제 끓인 된장찌개를 드시겠단다.


알겠다고 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두부를 잘라서 찌개에 넣는데 돼지고기 김치찌개냐고 물으시더니 ‘나도 그거 먹겠다’고 하셨다. 아아, 우리 엄마한테 맞추고 살기 진짜 힘들다. 아침부터 이런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받는 내가 이상하고 예민한 건가.


점심을 먹고 앉아 있다가 며칠 전에 갈비탕과 설렁탕을 사다 달라는 엄마 말이 생각나서 배달앱으로 주문을 했다. (엄마는 원하는 메뉴를 엄마 입맛에 맞는 단골 식당에서 사다 드려야 만족해하신다.) 집 근처에 있는 식당이라 평소에는 배달비 아까워서 직접 가서 포장해 오는데 오늘은 도저히 거기까지 갈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서이다.



가장 쉽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식탁이다.

단골 인터넷 쇼핑몰 배송 상자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면서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 의문점이 들었다. 나에게 식탁은 전쟁을 치르는 곳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먹는 즐거움이 크기는 하지만 바쁘고 힘들어 식사 준비에 지칠 때는 알약 하나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