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와 착한 딸 콤플렉스
지적장애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단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에게는 진단의 문제, 검사의 문제일 뿐이지만 환자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생활의 문제다. 한 지적장애아의 어머니가 남긴 유명한 문장이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
“내 소원은 아들이 죽은 다음 날 죽는 거예요.”(p.193)
-류희주, ‘병명은 가족’ 중에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집집마다 말 못 할 사연이나 아픔이 있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장애가 있으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돌봄을 맡게 되고 그 사람의 일상은 무너지게 된다.
예전보다는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책임과 의무는 돌봄을 맡은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웨덴의 복지 제도를 보면서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나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국가에서 5명의 활동보조인을 지원해 주어서 돌봄을 받는 사람의 삶의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이 헝클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간병(잠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되는 간병을 말함)은 남의 집 얘기인 줄 알았다. 오래된 모임에 나가면 지인들의 부모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병원 모시고 다닌다거나 간병하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가족은 반드시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프레임에 강하게 갇혀 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자기 삶을 지속하면서 간병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돌봄과 간병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 지원을 충분히 마련해 준다면 지적장애인의 어머니가 아들이 죽은 다음 날 죽고 싶다는 소원을 빌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