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으면 그만이지
며칠 전 일요일, 남편이 슈퍼에 가면서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하길래 ‘부라보콘’’을 사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했더니 “아차, 그걸 깜박했네. 다시 갔다 올게.” 이러는 거다. 자신이 마실 맥주는 야무지게 챙기면서 부인이 먹을 간식은 빼먹다니.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다시 슈퍼에 갔다 온 남편은 자랑스럽게 ‘월드콘’을 내게 내밀었다. 난 분명히 ‘부, 라, 보, 콘!이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어이없어하는 내게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이게 맛있어. 아니면 다시 사다 줄까?”라고 했고 난 됐다며 엄청 삐진 티를 내며 월드콘을 우적우적 먹었다. 단 걸 먹으면 없던 스트레스와 화도 사라져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운함과 화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일상에서 마음이 상할 때는 사소한 일에서 비롯할 때가 많다. 주말에 화가 난 포인트는 ‘서운함’이었다. 본인이 먹을 건 잊지 않으면서 나는 챙기지 않았다는 서운함이 컸다.
부라보콘이면 어떻고 월드콘이면 어떤가. 더운데 두 번이나 슈퍼에 갔다 온 남편에게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을 했다면 남편은 나에게 더 미안해했을 것이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에 남편도 건망증이 심해져서 그런가 보다 웃으며 넘기면 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남편이 사 온 아이스크림이 부라보콘이 아니라는 것에 불같이 화를 내놓고 지금은 냉동실에 넣어 둔 월드콘을 꺼내 맛있게 먹고 있다.
나는 왜 부라보콘이 아니면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치열하게 화를 냈을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웃어넘길 일에 죽자고 덤비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월드콘도 부라보콘 못지않게 맛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