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근무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미안한데 이따 오면서 삼계탕 2인분 좀 사다 줄래”
엄마가 다치시기 전, 혼자 다니실 수 있을 때 외출했다 오는 길에 자주 가셨던 집 근처 식당의 삼계탕을 사 오라는 전화였다. 퇴근해서 집에 주차하고 식당에 가서 삼계탕을 사 들고 돌아오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지 어깨가 빠지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다고 말하며 힘겹게 들고 온 삼계탕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데 안방에서 TV를 보고 계시던 엄마는 내가 들어왔는지도 모르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골다공증이 있으신 엄마가 작년에 넘어지신 이후로 아픈 동생과 엄마를 돌보는 일과 집안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갱년기에 접어들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체력이 더 안 좋아졌는데 직장에 다니면서 익숙하지 않은 살림과 두 명의 가족 간병까지 하다 보니 힘에 부치고 스트레스가 쌓여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에도 버럭 화를 내게 되었다.
입맛 까다로운 엄마를 돌보는 일은 정말 어렵다. 식재료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엄마의 끊임없는 요구 사항을 해결하려면 시간과 비용, 정신력, 체력의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이 거의 떨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장을 보는데 엄마는 식재료가 충분히 있을 때에도 구입해야 할 목록을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주말에 인터넷으로 한바탕 장을 보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새벽 배송 온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나면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움직인 탓에 진이 빠진다.
어느 날 퇴근하고 왔더니 우리 집에 오는 요양 보호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어르신은 먹을 게 없어서 못 드시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다 못 드시겠어요. 직장 다니면서 이거 다 준비하려면 따님이 참 힘드실 것 같아요.”
그날, 내 어려움과 고충을 알아준 그분의 말을 전해 들으며 울컥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어한다는 건 알고 계시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느 정도로 힘든지는 잘 모르신다. 가족이니까 그 정도의 수고는 할 수 있는 것이고 장보기도 인터넷으로 하니까 별로 힘들 게 없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팔십이 넘으신 엄마가 예전보다 훨씬 왜소해진 몸으로 식사하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전업 주부로 살면서 평생 가족의 밥을 챙겼던 엄마의 지난날을 상상해 봤다. 엄마가 나의 고충을 몰라준다고 원망만 할 수 없는 이유는 나도 살림을 도맡아 하셨던 엄마의 노고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는 종종 이렇게 푸념하셨다. “나도 차려주는 밥 먹고 싶다.” 엄마도 매일 가족들의 밥을 준비하는 게 힘겨우셨던 거다.
누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힘든 일 하나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의 밥을 끊임없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리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기에 집안일 중에서도 가족의 밥을 챙기는 일이 고역이다. 명예퇴직을 한 후에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던 지인이 퇴직한 남편의 삼시 세끼를 매일 챙기면서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요리를 잘하는 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누군가의 밥을 계속 챙긴다는 것은 일상의 자유를 일정 부분 반납해야 함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그분이 우울증에 걸린 원인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가끔 해 본다. 한 끼의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되어서 하루에 한 번 정도만 밥을 먹고 나머지는 알약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슬기로운 산촌 생활’이나 ‘바퀴 달린 집’ 같은 출연자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는 예능을 보며 힐링을 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 밥이 아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게 아닐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주인공이 집에 가서 엄마가 정성껏 차려 준 밥을 먹으며 위로받거나 오랜만에 집에 들른 자식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주는 엄마가 나온다. 밥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주거나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노동이 된다.
나는 오늘도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고, 밥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