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나물’로 논쟁하다

by 비니

“오늘은 어쩐지 조용히 넘어간다 했다.”


동생을 재우기 위해 잠자리를 정리하는데 엄마가 시금치. 나물을 먹다가 뭐가 씹혔단다. 저번에 돌이 섞여있던 그 깨를 요양보호사가 넣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금치가 깨끗이 안 씻겨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가 불편했던 부분을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뚝뚝하고 말도 다정하게 못 하는 딸이지만 속상하다.


“엄마, 저한테만 얘기하지 말고 요양보호사에게 말씀하세요. 나물에 뭐가 씹혔다고요.” 엄마는 딸이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게 싫었는지 “말할 거다, 너한테는 그냥 넋두리한 거니까 대답 일일이 안 해도 된다.” 오늘은 화내지 않고 편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했더니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얘기할 때마다 저도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왜 불편해하냐. 그럴 필요 하나 없어. 벽보고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라.”


‘시금치나물에 뭐가 씹혔다.’가 이렇게나 길게 말할 화젯거리는 아닌데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점점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아니, 엄마. 그런 말 듣고 자식 입장에서 어떻게 안 불편해요. 그런 말을 어떻게 듣고만 있어요?” “네가 나한테 말하지 말고 요양보호사에게 말하라고 하니까 그런 거지.” 순간 아차 싶었다. 나만 상처받는 게 아니라 엄마도 내 말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제가 잘못 말했네요. 나한테 하지 말라는 말은 하면 안 되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나만 엄마에게 상처받는 게 아니라 나도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구나.


“아니다. 네가 잘못한 거 없다.”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잘못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이렇게 논쟁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엄마의 대사가 “오늘은 어쩐지 조용히 넘어간다 했다.”이다.

엄마의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두 사람의 갈등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편해진디. 엄마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어서 안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엄마의 말이 얼마간 계속 들려왔다.


엄마와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등이 상극이라 되도록이면 길게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다 대화가 길어지면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대화의 방식이나 말투에도 고쳐야 할 점이 많을 것이다. 그것부터 살펴봐야 하는데 엄마와 동생 돌봄과 가사 노동, 그리고 내 일까지 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이다 보니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래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내 문제점부터 분석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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