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은 옳다

by 비니

“약국 다른 데로 가면 거기서 약 안 갈아줄 수도 있으니까…….”

동생 약 타러 병원 가던 중에 폰이 울렸다. 지난 주말에도 했던 그 걱정을 또 늘어놓는 엄마의 전화였다.


동생은 알약을 못 먹기 때문에 약국에 갈아달라고 말해서 가져온다. 전에 다니던 약국은 몇 년간 단골이었기 때문에 알아서 갈아주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병원을 바꾸면서 약국도 새로운 곳에 가게 되었다. 엄마는 약국이 바뀌니까 혹시나 알약 그대로 가져올까 봐 걱정하는 전화를 한 것이다. 동생이 알약 못 삼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삼 년째 내가 대리처방으로 동생 약을 받아오고 있는데 넘어지신 후로 집에만 있다 보니 가뜩이나 ‘걱정 부자’인 엄마의 걱정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엄마는 “네가 못 미더운 게 아니라 약국을 못 믿어서 그런다”라고 했지만 내가 약 갈아달라고 분명하게 말하면 왜 약국에서 약을 안 갈아 주겠는가. 결국 나를 못 믿겠다는 의미로 들려서 속상하고 서운했다.

속상한 마음에 화난 목소리로 “밥도 못 먹고 병원 여러 번 가느라 고생한다는 말은 안 하고 약 안 갈아올 것만 걱정하냐”라고 하자 엄마는 “너, 참 이상하다. 그냥 ‘알았어요’ 하면 되지 왜 화를 내니?”라며 언짢아했다.


내가 서운함을 털어놓을 때마다 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힘이 빠진다. 코로나가 시작된 재작년 초부터 나 혼자 출근하면서 죽을힘을 다해 엄마랑 동생 간병 뒷바라지하고 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동생이 아프다고 해도 그렇지 나는 자식이 아니란 말인가. 아픈 자식만 마음 아프고 다른 자식들은 멀쩡하니까 엄마랑 동생한테 무조건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엄마와 아픈 동생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롭다.


올해 초 지역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한 감정코칭 프로그램 강의를 들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모든 감정은 좋은 감정이며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나쁜 감정이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불안도가 높아진다, 화를 내되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상대와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감정코칭 강사님은 ‘상황이나 상대방이 달라지기는 어려우며 내가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말에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 ‘나만 참으면 조용하고 편안하게 일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억울해졌기 때문이다.


간병 스트레스로 지나치게 화를 많이 내다보니 오히려 마음에 병이 커졌다. 작은 자극에도 폭발했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나의 내면을 지배했다.


이제부터 꾸준히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서운한 것이 있으면 차분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겠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단단해진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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