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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Sep 15. 2022

<짧은 소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

  그녀는 언제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불행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하지 아니함’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보겠다. 그녀는 언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가. ‘손이 떨릴 정도로 배가 고플 때, 경제적인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때,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할 때, 햇살 좋은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출근해야 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는 게 없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기분에 빠져 들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말수가 적은 데다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착하다는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기며 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사춘기를 보냈다. 그렇지만 그녀도 사람인지라 숨 쉴 구멍이 필요했기에 아주 가끔 작은 일탈을 했다. 예를 들면 시험 기간에 공부하는 척하고 부모님 몰래 동생이 빌려 온 만화책을 보거나 문제집 산다고 받은 돈으로 친구와 영화관에 간다든가 하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에게, 겨우 그런 걸 반항이라고 했던 거야?”라는 핀잔을 들을 게 뻔한 그런 일탈이었다.

  ‘과도한 책임감과 성실함, 지나친 양보와 겸손’을 장신구처럼 몸에 주렁주렁 매단 채 어른이 된 그녀는 어느 날부턴가 부모님의 간섭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독립된 인생을 살기 위해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결혼’이었다.

  사춘기도 이긴다는 천하무적 갱년기로 접어든 그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젊은 시절의 자신을 찾아가서 정신 차리라고, 인생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곤 한다.        

  그녀가 자신의 결혼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남편의 늦은 귀가였다. 딸만 셋인 집안의 맏딸인 데다가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 남자들의 심리나 생활 패턴에 대해 잘 몰랐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고, 연애 시절, 남편은 그녀를 극진히 위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만은 달콤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남편은 회사 동료들과의 잦은 술자리를 즐기느라 퇴근이 늦었다. 게다가 술에 취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거나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가는 경우가 은근히 많아서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의 남편은 가부장적인 사고의 소유자이고 술을 매우 좋아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었다.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렸던 그녀는 그런 남편에게 화를 내다가도 금방 풀어졌고, 나만 조금 참으면 모두 편안해진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종종 들춰내어 남편을 곤란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다. 첫아이를 가지고 배가 많이 나왔던(정확히 몇 개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시간. 설거지를 하다가 다리의 힘줄이 뭉쳐 서 있기가 힘들어진 그녀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축구 경기에 빠진 남편에게 “자기야, 나 다리가 너무 아파.”라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해.”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설거지를 마쳤다. 그때 그런 남편의 반응에 왜 별로 화를 내지 않았었는지 그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그놈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 탓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남편은 장난기가 많은 남자이다. 이게 마냥 재밌기만 한 게 아니라 때때로 상대방의 화를 증폭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가기로 한 날, 남편이 집에 오면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에 오기로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아 전화해서 지금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남편의 답은 이랬다. “지구.”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진지해야 할 상황에 이런 식이면 짜증이 밀려온다.

  게다가 어찌나 인류애가 강한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말해서 그녀의 울화를 더 상승시키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이 재활용 분리수거를 한 어느 주말, 베란다에 플라스틱을 담아 놓는 분리수거함이 뒤집어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이거 왜 씻었어?” 그녀의 질문에 남편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아지가 바닥에 내려놓은 분리수거함에 소변을 보더라고. 그래서 물로 헹구고 말리는 거야.” “뭐라고? 그럼 강아지 주인이 미안하다는 말은 했어?” “아니. 그냥 가던데? 강아지가 갑자기 그런 건데 뭐 어쩌겠어.” 열이 스멀스멀 뒷목을 타고 머리 쪽으로 올라오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와 진짜 너무 하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하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반성할 뻔했다.

  남편이 그녀에게도 이렇게 너그럽고 후하다면 그의 박애주의 정신을 날마다 칭송했을 거다. 그녀는 남편이 일하다가 열받았던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 사람 누구야. 전화번호 알려 줘. 내가 당장 전화해서 가만 두지 않을 거니까.”라며 무조건 그의 편을 들어줬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녀가 속상한 일이 있어서 화를 낼 때 “그 사람한테도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이해하고 넘어가야지.”라며 다른 사람 편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남편과 살면서 천사에서 전사가 되었다. 예전의 순하디 순한 모습은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추고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일에는 참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곤 한다.

  밝음에는 어두움이 뒤따르고 동전도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험난했던 결혼 생활은 그녀를 변화와 성장의 길로 이끌었다. 삶의 우선순위와 행복의 기준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았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십 대 중반인 남편이 예전보다는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속으로 ‘저 남자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보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그녀의 착각임을 깨닫게 해 주는 사건이 터졌다.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 도어록은 설치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비밀 번호를 제대로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몇 주 전 늦은 밤에 있었던 일이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쉬고 있던 그녀의 귀에 현관문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삑사리가 난 것 같은 불협화음이 울리면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왔나?’ 생각하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그녀가 묻자 “앞집 사람인데요.”라고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그녀는 소파로 돌아가려다가 불현듯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앞집 사람이라고? 아니, 헷갈릴 게 따로 있지. 앞집은 도어록이 아니고 열쇠로 여는데?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 온몸의 솜털이 무서움으로 곤두섰다. ‘어떤 남자가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도어록을 눌렀나? 문을 열고 확인해 볼까? 아니지. 그 남자가 아직 현관 밖에 서성대고 있다가 내가 문 열기를 기다려 흉기를 휘두를지도 모르는데? 112에 신고해야 하나?’ 여기까지 추리를 하자 점점 공포가 밀려왔다.

  현관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지만 센서 등이 작동하지 않아서 캄캄한 어둠만 시야에 들어왔다. ‘갔을까? 아냐. 그 남자가 일부러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건지도 몰라.’ 그녀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자신의 심장 박동이 귀에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때였다. 센서 등이 켜지면서 밖이 보였는데 어이없게도 수상한 남자의 정체는 바로 남편이었다. 일시에 긴장이 풀린 그녀가 문을 열자 앞집 문 앞에 검은 비닐봉지를 놓으며 “이거 오늘 밭에서 뽑아 온 상춘데 좀 드셔 보세요.”라고 말하는 남편의 등짝이 보였다.

  “지금 뭐해?”

  “어? 당신이야? 난 아까 앞집 아주머니가 대답한 줄 알았네.”

  “아니, 와이프 목소리도 몰라? 그리고 그건 뭐야?”

  “아, 이거? 상추 뽑아 왔는데 앞집 나눠 주는 거야.”

  “우리 건?”

  “우리 먹을 건 나중에 또 가져오면 되지.”

  “......”

  그녀는 남편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그때까지 앞집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앞집 문 앞에 얌전히 놓여 있는 비닐봉지를 집어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식구들 먹을 걸 먼저 챙겨야지.”

  “다른 사람들 먼저 챙기는 게 좋은 거지.”

  남들한테만 후한 저 인심. 저 정도면 불치병이다. 그녀는 저런 남편에게 더 이상 대꾸할 의욕도 사라졌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건데 내가 너무 오버했네.’ 그녀는 이제 화도 나지 않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로또보다도 더 안 맞는 남편과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그녀는 머리가 아파왔다. 집에만 오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또 보는 남편. 더 나이 들면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니까 은퇴한 후에는 그 좋아하는 자연으로 보내고 주말, 아니 월말 부부로 사는 거다. 가끔 남편의 전원주택에 놀러 가서 밥도 얻어먹고 쉬다가 올라와야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렇게 살면 갈등도 안 생기고 혼자 살고 싶은 그녀의 소망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그녀는 <나 혼자 산다> 재방송을 보면서 미래의 어느 날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눈을 뜨면 세수를 한 후에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한다. 깔끔하고 심플하게 꾸민 공간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뭔가를 열심히 쓴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깔깔 대며 웃는다. 그리고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한다.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정말이지 설레고 행복해서 몸서리를 쳤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된 것 같았던 그녀가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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