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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Jun 09. 2023

나는 매 순간 딸이 그립다

세상 모든 엄마는 제 자식을 버린다. 그래야만 아이는 홀로 서고 한 사람의 독립된 개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자기 책임으로 떠안는 독립적 개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식구들은 다들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고 집에서 서로 위안한다. 생각해 보면 부모로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계를 짓는 것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p.75)
          <돌봄과 작업> (정서경 외, 돌고래) 중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홍한별) 중에서


    딸아이를 먼저 보내고 난 후 죄책감과 미안함이 폭풍우에도 뽑히지 않는 나무처럼 내 안에 뿌리를 내렸다.

   저자처럼 나도 일하기 위해 자녀 돌보기를 소홀히 했고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식구들은 집에서 서로 위안한다’고 했으나 가족이라고 서로를 위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날카롭게 손톱을 세우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우리 집이 그랬다. 가정적이지 않은 남편에 대한 불만과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내가 좀 더 딸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엄마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미칠 것만 같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라는  말에 동의하고 타고난 명은 인간의 힘으로 좌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딸을 앞세웠다는 죄의식이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면죄부를 받고 싶지도 않다.

   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견딜 수 없고  미치도록 딸아이가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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