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지지 않으니까 약속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약속하겠다, 꼭 지키겠다.”라고.
나는 내가 한 말이든 다른 사람의 말이든 거의 믿지 않는다. 원래 지키기 힘든 속성을 지녔기에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니까.
중국에 가 있는 3년 내내 동생은 엄마와 막내를 혼자서 돌보는 언니에게 미안해했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언니 혼자 힘들게 해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반씩 나누어 하자. “
서운했다. 절반으로 나누어하자니. 자기가 더 많이 하겠다고, 언니는 좀 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과연 그렇게 될까? 돌봄의 주도권이 나한테 넘겨졌는데. “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생이 돌아온다고 내가 감당하는 몫과 힘듦이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나보다 엄마에게 더 자주 전화하는 동생에게 화도 났다. 절대로 먼저 전화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다가도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면 동생에게 전화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상한 성격의 제부가 휴직을 하고 따라가 살림을 맡아 뒷바라지를 해주는 동생보다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는 내가 더 건강했다. 아니, 건강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쓰러지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보다 강한 존재인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했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무너지지 않을까.
몸이 힘들기도 하지만 엄마와 맞지 않아 더 힘들다고 동생에게 하소연했고 “많이 힘들지. 언니가 고생이 많네.”라는 위로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은 그 말을 듣는 것을 힘들어했다. 통화를 하고 난 밤에는 잠을 잘 못 자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고 했다.
엄마는 연세가 많으셔서 달라지지 않을 테니 언니가 엄마에게 맞춰주고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현타가 왔다. 그동안 나의 고충과 어려움을 수없이 얘기했음에도 이런 답변을 받다니.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전부 다 알아주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하긴 나도 동생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지 않은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상상하나 온전히 내 입장에서 판단한 짐작일 뿐이다.
그러니 ‘동생이 내 아픔과 고통을 알아줄 거라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고 괴로워하지 말자’ 다짐하곤 한다. 물론 잘 안 된다. 어렵다.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이해받으려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족이라고 해도 나와 다른 존재이고 가까운 타인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안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