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막내 동생의 대리처방을 다녀와서 지인과 만나기 위해 운전을 하면서 작년에 떠난 딸을 떠올리며 울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무슨 일이 있나?’ 불안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안한데 약국에서 해열제 좀 사다 줄래?”
동생이 요새 열이 약간 있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또 열이 오를지 모르니 상비약으로 사다 달라는 거였다. 문제는 집에 해열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힘이 빠졌다. 지금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병원 다녀온 딸에게 엄마는 지금 이 순간 이 말을 꼭 해야만 하는 걸까.
“아까 병원 갔을 때 전화했으면 사 왔을 텐데 왜 그때는 연락 안 했어요?”
감정이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말이 곱게 안 나왔다. 딸을 잃고 울고 있는 나는 도대체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가 병원에 갔을 때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내 마음이 힘들고 슬프니까 엄마의 말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건 둘째한테 사다 달라고 해도 되잖아요. 왜 맨날 나한테만 얘기해요. 자식 먼저 보내서 가슴이 찢어지는 딸의 입장은 왜 헤이리지 못하는 거예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울면서 전화를 끊고 운전을 했다. 잠시 후에 엄마의 미안하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도 요동치는 슬픔의 파도는 가라앉지 않았다.
내 삶을 지옥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