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by 비니

엄마는 열이 나면 수시로 체온계로 체온을 체크하는 분이다. 본인에게만 적용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면 된다.(옆에 있으면 이것도 왠지 스트레스다.) 사람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사는 거니까.


문제는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가족에게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프면 그냥 놔두는 게 편하다. 오히려 너무 챙겨주면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다.


혼자 알아서 약 먹고 누워서 끙끙 앓는 게 마음 편하다. 엄마가 나를 걱정해서 열 좀 재라, 얼음 수건 해라, 밥 먹어라 계속 챙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나란 인간이 이렇게 생겨 먹었다.


남들이 보면 엄마 마음도 몰라 주는 정 없는 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아들이 며칠 무리하더니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집에 감기약 먹다 남은 게 있어서 밥 먼저 먹으라고 배달 음식과 원하는 음료를 주문해 줬다.


내 방에 누워 있는데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가 들린다.

“열 좀 재 보자.”

“제가 이따가 잴게요.”

“아니야. 이거 넌 잘할 줄 몰라. 할머니가 해 줘야 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할머니가 체온계를 들고 손자에게 열 재자는 말이 들렸다.

“할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저 좀 놔두세요.”


남들이 들으면 할머니에게 화내는 버릇없는 손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자고 있는데 자꾸 와서 열을 재라고 하니 힘든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아들이 나를 쏙 빼닮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서운해한다.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왜 딸과 손자는 나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효녀가 되기는 애초에 글러먹었다. 상관없다. 효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간병을 하다 보면 몸만 힘든 게 아니다. 마음이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환자를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나에게 따뜻함과 친절함까지 요구한다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매번 퉁명스러운 건 아니다. 아주 다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애쓰고 있다가 뭔가가 내 마음을 건드리면 쌓여있던 폭탄이 터지고 만다.

나는 지금의 내 운명을 묵묵히 짊어지고 걸어갈 뿐이다. 고생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대단하세요. 저라면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

나도 예전에는 간병하는 분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까, 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게 된 거다.


상담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 아니다, 대단하신 거‘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가. 내가 대단한 사람인 건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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