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유, <해방의 밤> p.15)
삶에 스며든 불행은 받아들임 여부의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겠노라고 거부를 해도 딸은 살아나지 않는다.
불행이 현재의 내 삶에 갖고 있는 지분이 지나치게 많다.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