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이별은 아프다. 그러나 그 또한 다 잊혀진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길 한 가운데 덩그라니 놓인 그것은 새끼 강아지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 작디작고 하얀 그것이 왜 길 한 가운데 있는걸까.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동생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데려갈까?”
조심스레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우리 집은 옛날 인기드라마 제목과 같은 ‘한지붕 세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집의 지붕 밑에서 다른 한 가족으로 세 들어 살고 있었기에 데려가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은 작고 하얀 그것에게 빼앗겨버렸고 누가 볼까 냉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동생의 대답 따위는 이미 상관없었다.
난처한 기색을 살짝 티 나게 내비치긴 하셨으나 주인집에서는 그 녀석이 한 지붕 아래 서 지내는 것을 허락해주었고, 그날부터 그 녀석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가장 처음 한 일은 그녀석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름.짓.기 였다. 당시 미국에서 잠시 귀국하셨던 이모부께 작명을 의뢰하여 ‘토니(Tony)’라는 아주 멋지고 흔한(영어책에 엄청 많이 등장함) 이름을 얻어냈다. 작고 하얀 ‘그것’에서 이젠 ‘토니’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린 몇 개월이나 한지붕 아래서 행복했던 걸까? 토니는 아마 잡종이었던 것 같다. 성장 속도가 엄청났다. 더 이상 지붕 아래 둘 수 없었고, 토니는 마당에 자기만의 지붕을 갖고 독거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혼자 살기 싫었는지, 밤마다 내가 그리워서 그랬는지(물론 전적인 내 생각이지만) 짖어대기 시작했고 우리 집 지붕의 주인의 눈살이 점점 찌푸려져 가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토니, 다른 집으로 보내자.”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되는 곳으로 토니를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이별’이었다. 토니를 데려다주었다. 뭘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는 그녀석을 뒤로하고 등을 보였다. 그리고 한걸음을 내딛었다. ‘진짜 이별이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개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석이 좋아했던 쥐포를 한 봉 사서 들고는 찾아갔다. 쭈그려 앉아 쥐포를 뜯어서 먹여주고 돌아오는 길엔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 일을 수차례....
어느 날 그녀석의 새로운 주인이 말했다. 내가 자꾸 찾아와서인지 그녀석이 새로운 주인에게 정을 주지 않는단다. 그러니 이제 그만 찾아오라고...
진짜 이별을 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이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별은 아프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이별도 참 아팠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어느새.
다 잊혀져버렸다.
시간엔 장사 없다더니.
이별도
이별의 아픔도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