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by Reㅡ

1885년 아펜젤러가 처음 선교사로 조선에 왔을 때, 그의 몸무게는 200파운드(90.7Kg)였으나 1891년 안식년을 떠날 때는 140파운드(63.5Kg)였다. 1900년, 유럽으로 2차 안식년을 떠날 때, 그의 몸은 131파운드(59.4Kg)로 줄어 있었다. 아펜젤러는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 새로운 각오로 선교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군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44세의 이른 나이에 삶을 마쳤다. 그의 순직이 해상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도 없었다. 당시 신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한 생명을 살리려 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 제1묘역 자열 4번째의 아펜젤러의 묘에는 그의 유품만 묻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사람 아펜젤러는 시신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조선 땅, 선교지에 바치고 떠났다. _ [복음, 성령, 교회] 김명구 저. 중에서 (p.152-153)



아펜젤러 목사님은 왜 하필 조선에 왔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조선 땅에서 지내는 18여 년의 시간 동안 체중이 30Kg이나 빠졌을까?
하나님은 왜 그를 44세라는 이른 나이에 데려가셨을까?
조선 땅에 들어와 언어를 익히고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하고 사람을 세우고 신약성경을 제작하고 세례를 베풀고 자립과 자전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일에 쓰임 받았던 그를 하나님은 왜 더 사용하지 않으시고 데려가셨을까?

수많은 질문을 던져보지만 주님의 깊으신 뜻을 나는 조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펜젤러 목사님의 삶을 들여다보며, 조선 땅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느낍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며 살아간 그 인생을 봅니다.


참 감사합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모양새와는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서양인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꽉 닫은 이들에게, 새로운 언어까지 배워가며 애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달라질 때까지,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음을 전해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까지 생명 다해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후에 천국에서 혹 만나게 된다면, 조선의 언어로 첫 설교를 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우셨는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