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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an 10. 2021

관음증

상념의 방




현대인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질병이 무엇일까. 당뇨? 암? 감기? 혹은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 수많은 질병이 우리 삶을 괴롭히고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현대인의 ‘관음증’이야말로 우리 삶을 뒤덮고 있는 만성질환이라 생각한다.


관음증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변태스러움이나, 저질스러움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누군가의 성기를 몰래 지켜보는 데서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관음증이라고 한다. 단어에서 느껴지는 변태스러움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음증은 사전적 의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굳이 누군가의 성기를 지켜보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은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일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일상 ‘구경’은 어느새 우리 일상에 녹아들어 버렸다. 우리는 매일 친구들의 SNS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지켜본다. 누구와 만나,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 그 사람의 SNS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모르는 사람과도 연결돼 있다. 해쉬태그로 이어진 인스타그램 속 세상에서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5000km 밖 남미에 사는 한 30대 남성의 일상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일상을 알리고, 또 타인의 일상을 구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매체다.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연예인, 내 친구, 직장 상사 혹은 내가 싫어하지만 궁금한 이의 하루까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티브이도 누군가를 관찰하는 일에 열광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으로 가득 차 있다. 연예인들의 솔로 라이프, 연애기, 결혼과 육아 과정, 여기에 더해 가족들과의 생활까지 본다. 누가 더 '리얼' 하거나 '재미있는' 일상을 보여주는지가 흥행의 여부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관찰 예능도 연출과 대본이 있을 터이지만, 이전과 같이 온전히 연출로만 구성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 중 하나인 '일상 브이로그'는 일반인 유튜버들의 삶을 보여준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통한 일상 공유를 넘어, 영상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회사원 브이로그, 퇴사 브이로그, 카페 브이로그, 자취생 브이로그 등 그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의 일상적 삶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데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트렌드가 유행이 되었을 때, 대부분 그 트렌드에서 파생되는 과도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 ‘관종의 삶’이라는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열정이 담긴 콘텐츠를 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콘텐츠를 보게 되는 나의 이중성이 어쩌면 현대인의 관음증의 종착지가 될까 우려스러웠다.


우선 이 콘텐츠는 굉장히 선정적이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출연자는 과거 성매매 업소 종사자, 성인방송 BJ, 논란이 됐던 스트리머들, 성소수자, 과거 조폭 출신, 특이식성자 등이다.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규정짓는 삶과 더 거리가 있는 일상을 사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특이한 모습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 즉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이 나온다.


더 많은 조회수를 위해 출연자들은 자극적인 형식으로 소개가 된다. 특이한 모습이나 선정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영상 내용은 사실 별 게 없다. 집을 방문해 인물을 소개하고, 그 사람에게 시청자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대신한다.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원초적 흥미와 궁금증을 콘텐츠를 통해 해소시켜준다. 그래서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조회수가 높고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인간 유형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킨 결과다.





이런 류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콘텐츠는 유튜브에 꽤 있다. 하지만 이 콘텐츠가 거북했던 것은 영상 속에서 소개되는 이들의 ‘특이함'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이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출연자들은 콘텐츠에서 굉장히 하찮고 한심한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 그의 삶이 어찌한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사람의 일상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척 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들을 조롱하는데 그치고 있다.


가령 특이한 음식을 먹으며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에서 돈을 버는 스트리머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줄 테니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라고 한다. 또 자막을 통해 괴기한 여장을 하는 성소수자를 조롱한다. 유흥업에 종사했던 여성은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출연한다. 출연자와 제작자 모두가 합의한 후에 제작된 영상이겠지만, 누군가의 특이함, 부도덕, 혹은 범죄가 이런 방향으로 소비되는 일이 과연 옳을까 의문이 들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댓글이었다. 시청자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위안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창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저런 하류 인생보단 내 인생이 낫다', '왜 저렇게 살까'와 같은 자기 위로나 출연자를 비난하는 댓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보다 못한 삶을 사는 타인을 관찰한 후에 스스로 내 인생이 낫다며 자위하는 일. 콘텐츠가 추구하는 방향 자체도 그래 보였다. 다큐 형식으로 생생함을 살리는데, 제작자 역시 출연자들을 인터뷰하며 무시하고 무례하게 군다. 자막도 조롱이 가득하다. 또한 '아, 이거 계속 보게 되네', '관음증 충족시켜주는 영상이다'와 같은 말들도 굉장히 많다. 시청자들 역시 영상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임을 알고 있지만, 결국엔 그 내용이 인간의 원초적인 궁금증과 흥미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도 영상의 자극적인 내용에 끌려서 시청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서 동 떨어진 이들의 삶이 묘사된 방식에 거북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음 편이 궁금해지고, 또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들과 나의 삶을 선 긋는 마음은, 나 역시 원초적인 관음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제작자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된 것이다. 그가 사람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영리하게 자극했다는 방증이다.





타인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예인이나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뒷 이야기를 담은 X-파일 이라던지, 조선시대 때부터 왕이나 양반들에 대한 야사가 음지에 존재해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 그중 한국에서 이 관음증은 더 이상 음지의 문화만이 아니다. '관종의 시대'라는 책이 나올 만큼 타인의 관심을 받는 일이 곧 '돈'을 버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트리밍 플랫폼, 심지어는 연예인까지 모두 누군가의 관심으로 돈을 번다. 관심과 돈이 비례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이를 일찍부터 활용한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과거에는 주류 문화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연예인들이 진출할 만큼 활성화됐다. 하지만 이 플랫폼들에서는 관심을 주고 돈을 내는 행위를 통해 BJ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시킨다. 그리고 그 행동이 무엇이 됐든,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대가를 지불했으니 너는 그러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스트리머들은 더 자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시청자들은 이를 바라보며 일종의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 '관찰'을 하는 관음증의 부작용이다.


논란을 일으켰던 철구, 지코, 신태일 등은 모두 이러한 관음증을 가진 시청자의 니즈를 잘 충족시킨 BJ들이었다. 그들은 시청자가 시킨 저급한 일을 한다. 시청자들은 '나 대신' 저급한 일을 하는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그래도 '내가 이 사람보단 낫지'와 같은 위안을 받고 웃기다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시청자들이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되레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이 그들의 저급한 행동을 부추기고, 지켜보고, 소비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이들과 같이 대놓고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관종의 삶'과 같이 영리하고 오묘하게 인간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콘텐츠까지 등장했다.


이를 단순히 음지의, 일부의 문화로만 터부시 하기에는 지금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고 있기 때문이다. 관찰 예능은 더 이슈가 될만한 인물을 섭외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사람들이 일상을 궁금해할만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에 더해 다음회 시청을 부추기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만 짜깁기해서 예고로 내보내기도 한다. 리얼리티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이슈가 될만한 행동을 작위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공중파 예능도 현 세태의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관심'이 돈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인간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관심이 없다. 한 개인의 지나친 행위가 문제시됐을 때 그를 규제하는 데에서 끝날뿐이다. 인간의 관음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이 아니다. 관심으로 돈 버는 일을 문제시 삼거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관찰 문화에서 파생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자성적 비판이 없는 현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과거 아프리카 BJ들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에 대해 '왜 저런 영상을 볼까' 하며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관종의 삶'을 보며 나 스스로의 이중성을 느꼈다. 동시에 사람들이 왜 이러한 영상에 열광할까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원초적인 관음증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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