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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Nov 17. 2020

N번방

상념의 방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져서 인류가 멸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류가 지구에 살게 된 확률은? 이 세계에는 ‘우연’이라고 여겨지는 수많은 일이 있다. 하지만 확률과 통계의 세계 속에서 모든 가능성은 단순 우연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작은 가능성들이 모여 커다란 개연이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우연과 개연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난다. 우연히 일어나던 개별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다 보면 어떤 공통된 개연성과 접점이 생긴다. 그 중 우리 사회의 ‘위험’이라는 요소는 개연의 축으로 기울어져 있다. 시선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있던 이들에게 더 크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위험이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연으로 가장된 어떤 위험은, ‘N번방’이라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에게 더 크게 존재하고 있었다.



N이라는 알파벳은 지칭하는 대상이 여러 개일 때 쓰인다. N번방도 마찬가지다. 여성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던 온라인 속 N번방, 쪽방촌과 임대주택의 N번방. 모두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온라인 속 N번방 피해자들은 신상 공개가 두려워 가학적 성착취에 응했다. ‘박사’들은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못한다는 점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악용했다. 쪽방촌과 임대주택에 사는 노동자들은 코로나 19의 위험 속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터에 나섰다가, 혹은 생의 우울함을 초월하게 해주는 종교 시설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이 되었다. 가난의 굴레 속 타인과의 교류로 유일한 안식처였던 곳이 되레 감염의 온상이 된 것이었다. 모두 우연히 피해자가 된 이들이 아니다. 시설화된 공간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기에 피해자가 됐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점은 여전히 등한시된다. 눈 앞에 보이지 않던 타인의 불행은 이들의 불행을 어쩌다 일어난, 소수의, 우연한 불행과 위험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설화된 위험은 우리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시선에 벗어나 있는 이들의 위험이라는 우연성은, 취약한 사회 구조가 만든 개연성을 덮어버린다.


N번방이 처음 공론화가 됐을 때 모두들 믿지 않았다. 소수의 피해자만 존재하는 사건이라고 여겨졌다. 극도로 잔인한 범죄가 일어날 때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쪽방촌에서의 집단 감염도 마찬가지였다. ‘쪽방촌’이 감염병에 취약함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염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시설화된 위험성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나서야, 해결책을 강구할 뿐이었다.



인간 시야의 한계는 위험의 우연성을 정당화시킨다. 위험의 공포는 실재를 당면했을 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쉽게 완력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선은 상상력의 한계까지도 규정짓는다. 경험해보지 못한 불행을 상상하는 일조차도 시선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징후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 징후들이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은 우리 시선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우연하게 일어난 단순 사고로 여겨졌던 것 뿐이다. 미성년자 채팅 성매매, 아동 포르노 딥웹, 리벤지 포르노 유통 등도 N번방 공론화 이전에 드러났던 디지털 성범죄 징후들이다. 노후화된 임대주택 시설과 여전히 남아있는 서울 쪽방촌 문제도 이미 공론화돼 있었다. 구조적 모순이 아닌 개인의 일탈과 불행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의 한정된 시선이 N번방을 확대.재생산했다.



꾸준한 관심으로 불행의 뿌리를 발견해야 한다. 위험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을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어떤 징후가 있었는지를 확장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아 우연과 개연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어디선가 발견되는 징후들을 무시하지 않을 때, N번방이 더 이상 우연으로 치부되는 일이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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