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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Apr 25. 2021

기생충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직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조는 2개. 1조는 무조건 A+ 보장, 2,4조는 이미 마감, 죽음의 3조만 피하면 된다. 모 아니면 도인데...



“학생 언제까지 고민할 건가요? 두 장 중에 한 장 어서 뽑으세요.”   



교수님의 재촉에 서둘러 뽑은 종이를 펼치자 야속하게도 숫자 3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온몸의 힘이 쫙 빠진다.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3조 조원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니 좌절감은 더욱 커진다. 총 5명의 조원 중 겨우 한 명만 앉아있다. 나머지 3명은 수업에 오지도 않았다. 교수님에게 다른 조원들의 행방을 여쭤봤다. 종종 결석하는 사람들이지만 형평성 때문에 조를 재편성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남은 한 학기 팀플 과제로 고생할 내 모습이 눈에 훤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렇게 인생 첫 팀플은 4명의 무임승차 조원들과 함께 시작됐다.



과제에 관심이 없는 팀원들 덕분에 나는 혼자서 발표 주제를 정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PPT 제작까지 해야 했다. 다른 조들이 역할을 나눠서 협업을 할 때 우리 조원들은 내가 분배한 최소한의 자료도 보내주지 않았다. 이들은 학점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나에게는 중요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분노는 점차 쌓여 이들에 대한 혐오로 진화했다. 조원들이 ‘나’에게 기생하면서 조별과제라는 영양가를 빨아먹는 기생충으로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생충은 숙주의 몸에서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 존재지만 사실 기생충의 존재 자체가 숙주에게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들이 먹는 양도 숙주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기생충은 언제나 자기 분수를 지켜서 먹기 때문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은 채로 자기 먹을 것만 챙겨 먹는 놈들, 그게 기생충이다. 


문제는 기생충이 영양분이 부족한 숙주에게 있거나 종숙주가 아닌 중간숙주에게 있을 때 발생한다. 숙주가 흡수해야 할 영양분이 부족한데 기생충이 이것을 빼앗아 버리면 숙주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기생충은 오랜 시간 종숙주에게 기생하면서 면역체계 안에 편입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간숙주에게는 해를 끼친다. 숙주의 상태와 종에 따라 기생충이 미치는 해악이 결정된다.



나와 함께 조별과제를 했던 조원들은 잘못된 숙주에게 기생했던 케이스다. 영양분이 부족한 중간숙주인 ‘나’에게 기생했기에. 나는 당시 21학점을 들으며 과제와 수업에 치여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수업 내 유일한 타과생이었던 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5명이 해야 하는 과제를 혼자서 하기 위해서 밤샘은 기본이었다. 그럼에도 나 혼자 모든 것을 해내기엔 역부족이었고 우리에게 기적은 없었다. 5명 모두 참여한 조보다 좋지 않은 성적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모든 책임을 조원들에게 돌릴 수만은 없었다. 조원들이 수업 절반 이상 결석하고 성실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를 방관한 교수님의 책임도 있었다. 



제비뽑기로 조가 구성된 것은 순전히 운에 의한 것이지만 진정한 형평성을 위해서라면 조원을 보정해줬어야 했다. 과제의 목적이 협업이지만 애초에 수업에 나오지 않으며 학점에도 관심 없는 이들과 형성된 조는 협업이 불가능하다. 또한 나는 타과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기에 전공지식이 필요한 조별과제를 혼자서 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별과제의 목적에 맞는 조를 구성해주는 일, 즉 기생충들이 잘못된 숙주에게 기생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 교수님의 역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애석하게도 내 능력과 제비뽑기의 형평성을 과신하셨고 결국 숙주인 나만 갉아먹은 채 한 학기의 노력은 낮은 학점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기생충들이 잘못된 숙주에게 기생하는 일이다. 기생충들이 충분한 영양가가 있는 종숙주에게 기생한다면 숙주와 기생충 모두 조화를 이루고 공생할 수 있다. 기생충의 존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 복지 제도에 기대어서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무조건 기생충이라고 욕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벌어진 자본 격차로 인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복지 제도의 혜택을 얻는다고 해도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금이라는 숙주의 영양분이 올바른 곳에서 걷어지고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숙주에게 세금이 전가되어 공생을 저해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기생충 자체를 혐오하기보다는 이들이 숙주를 해치는 기생충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구충제를 아무리 먹어봤자 계속해서 번식하는 기생충이 오히려 잘못된 숙주에게로 옮겨가 숙주를 갉아먹으며 파멸로 이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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