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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Apr 15. 2021

E의 이야기

시선에서



강남 입성은 내가 중학교 삼 학년 때 일이었다. 경제사정이 좋아져서는 아니었다. 꽤 넓고 깨끗한 집에서 세 식구 몸을 겨우 뉘일만한 삼십 년도 더 된 아파트로 이사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강남이라고 하면 고급 아파트가 즐비한 부자 동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탄천 건너 보이는 타워팰리스와 같은 행정구역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하 주차장이 없어 지상에 도로를 침범해 주차해놓은 차들로 빽빽한 동네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남이 뭐라고, 이사를 오자고 한 엄마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후에도 내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친구들처럼 학원을 많이 다니지도, 고액 과외를 받지도 않았다. 다만, 밤늦게까지 공부할 뿐이었다. 강남 변두리 오래된 아파트에 빚을 내 전세로 사는 우리 집과 다르게 수십 억 짜리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학교에서 만났다.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을 느꼈다. 우리 부모님이 평생 일해도 저 친구들보다 잘 살 수 없음을 깨달은 날,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운 좋게 ‘명문대생’ 타이틀을 갖게 됐을 때, 나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시작점인 학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천 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 나는 공정은 다 죽었다고 분노했다. 능력대로 대우받는 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라고.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갔으니 취업에 있어서도 유리한 출발선에 위치하는 일이 뭐가 문제인지 이해가지 않았다. 노력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오히려 혜택을 주는 역차별 같았다. 돈 많은 친구들은 부모 덕이라도 보면서 사는데, 중산층들만 힘든 세상이라며 불평했다. 그래서 출신 학교에 따라 벌어지는 노동 소득 격차도, 또 그로 인해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되는 누군가의 삶에도 관심 없었다. 그저 내가 지금보다 더 못살게 될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하지만 빚을 내서라도 강남에 올 수 있는 경제력이,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님을 만난 운이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SKY 재학생 중 8 분위 이상인 학생이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순전히 ‘능력’만으로 좋은 학교를 갈 수 없다는 의미다. 20대 80의 단층선으로 나뉜 한국 사회에서 상위 20의 청년들은 밑을 보지 못한다. 저성장 사회의 한정된 자원은 치열한 경쟁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가 끊길까 두려워할 뿐이다. 청년 공정 담론이 4년제 대학생들에게만 머물러 있던 이유다.


여전히 누군가는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을 보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출발선을 맞추어 주는 일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이루던 것들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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