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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n 21. 2023

인간관계의 완벽주의자

감정 통장이 깨끗했으면 해

인간관계의 완벽주의자이다. 완벽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긴다는 뜻은 아니다. 연락을 먼저 잘하거나, 관계 유지에 필요한 관심을 제때 적당히 보여주지 못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기존에 사귀었던 친구들과 오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기도 하다. 어떤 곳에서 계속 만나거나, 가끔씩이라도 먼저 연락을 해주는 사람들, 뜸하게 연락을 해도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오랜 친구들과만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친하다는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내 기준에 맞는 사람들만 옆에 두고 싶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완벽주의자이다. 내 기준이란 타인의 감정에 최소한의 배려심이 있는지이다. 이 기준이 깨지는 사람 주변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 다음 날, 며칠 후까지도 기분이 안 좋아서 힘들어한다. 어쩔 땐,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장소에 가야 한다는 압박만으로도 괴롭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서 그 사람의 말에는 최소한의 반응을 보이면서 마음속으로 거리를 둔다는 것을 보여줄까 생각한다. 그런 고민, 가기 싫다는 생각조차 나를 괴롭게 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했던) 사람이 있는 곳에 굳이 가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가지 않는 것이 나을까? 이렇게 한 명이라도 불편하다고 그 자리를 피해버리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못 만나는 것이 아닐까? 아무 일 없었던 척 못하는데 수동공격적으로 기분 안 좋은 티를 내는 것은 미성숙한 행동인가? 그렇다고 기분 좋은 척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기준에 맞지 않는 미성숙한 사람을 가까운 사람 카테고리에 넣지도 않을 텐데, 이 사람에게 직접 말할 생각도 없다. 나는 잘 지내고 싶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최소한의 배려심과 역지사지 능력이 있는 사람들과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 사람들한테 직접 말할 것도 아니면서 글로 써 내려가는 것도 수동공격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공간에 내 감정을 써 내려가기라도 해야겠다.


회사에 다니기 싫은 이유, 보스가 되고 싶는 이유도 이렇다. 일 못하는 사람, 말 많은 사람 다 괜찮다. 그런데 타인의 감정에 배려가 없는 미성숙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기가 싫다. 완벽주의자인지라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 내가 훼손되는 것 같다. 훼손되는 것이 맞다. 실제로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워지니까. 그런 사람들과 한 공간에 오래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싫은데 그 사람들이 나의 바운더리를 침범해 감정의 마이너스 잔고를 쌓기까지 하면 더 싫다. 내 통장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감정통장을 아주 깨끗하게 내가 좋아하는 이름으로만 채우고 싶은 완벽주의, 강박주의자이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뒤섞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통장에 올리고 싶지 않다. 소수의 사람들과 서로 작은 플러스만 쌓아가고 싶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회하며 사는 거지, 이 사람 저 사람이 통장에 많으면 좋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감정 통장이 깨끗했으면 한다.


나는 장난을 겉포장지 삼아 무례한 언어를 던지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례한 언어에는 나 역시 장난으로 포장한 무례한 언어로 갚아주고 공기 중에는 웃음이 오가지만 감정 잔고에는 마이너스가 쌓인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 바운더리 밖으로 그 사람을 쓱 밀어낸다. 그리고 또다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한다. 나에게 왜 말이 없냐고 물으면 답은 두 가지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또는 감정잔고의 마이너스를 더 쌓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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