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음이 괜찮다. 최근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오고 내가 하는 일들도 조금씩의 성과를 내며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잠 못 드는 밤, 그리고 조금씩 부대끼는 마음은 불안감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지만, 살이 조금 찌면 괜찮은 것이 아니다. 불안하니까 평소보다 많이 먹고 그래서 살이 찐 것이다. 연애를 하면 같이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서 살이 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연애를 하면 보통 살이 빠졌다. 밥만 먹는 것으로는 살이 안 찌고 오히려 빠지는데, 마음이 불안하면 군것질을 많이 해서 살이 찐다.
보통 연애를 하지 않을 때 더 불안해서 많이 먹고 살이 쪘다. 영원히 혼자일 것이라면 오히려 불안하지 않겠지만 연애를 향해 가는 그 과정, 중간 상태가 나는 내심 너무 불안했다. 자장면에 만두를 추가하는 것은 늘 옳지만 만남에 있어 자만추는 익숙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제는 아주 조금 알겠다. 시간을 들여야 되는 이유와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돌아 돌아가는 심리를.
상황이나 환경이 휙휙 변하면 불안도가 올라간다. 올해 들어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했고, 물리적인 자리 이동도 두 번을 했다. 그 위치와 방향에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내가 왜 사무실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이곳에서 바퀴 달린 의자 위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뇌에서 그저 주어진 명제로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사무실의 공간배치와 좌석배치는 도무지 자연스럽지도 일반적이지도 않다. 누구는 캐비닛들을 바라보고 있고, 누구는 누군가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초근거리에 타인과 얼굴을 맞대고 있고, 나는 근본 없는 한가운데 자리에 복도를 바라보고 앉아있다.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편안한 위치와 배치는 무시한 채 불안정한 배열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몸을 향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맞지 않는 방향으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불안도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올해의 딱 반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몇 번의 우주가 나를 휩쓸고 갔다. 그러니 돌이켜보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을 수가 없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우주가 오는 일인데, 전혀 다른 우주들이 온다는 말도 없이 와서 내 행성에 흔적을 남기고 갔다.
새로운 우주에서 온 인간 모양의 개체를 만나는 것은 외계인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 내가 익숙한 사람과는 너무 다른 사람과 대화와 감정을 주고받으며 낯선 것에 대한 충격을 감당하는 일이 결코 내 뇌에게 가벼운 과업이 아니었다. 왜 이 사람의 상중하안부 비율은 이렇게 특이하고, 왜 이 사람의 목소리는 이렇게 균열을 내며, 왜 이 사람의 마음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것일까. 낯섦, 의문, 과부하, 그리고 연속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 심화가 계속됐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 조금씩 지쳐갔던 것도 같다.
이상한 배치의 사무실에서 바퀴 달린 의자 위에 이상한 방향으로 앉아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낮게 깔린 하늘과 푸른 잔디, 산과 갯벌을 보니 마음에 안정도가 올라왔다. 땅에서 몇 미터, 몇십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땅과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을 시간을 보내고 햇볕을 부드럽게 맞으며 물과 땅이 만나는 갯벌의 흙을 밟으니 사람이 본래 있어야 할 곳과 더 가까이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이 들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보이는 나무 벤치에서 속에 있는 감정을 문장으로 꺼내어 내 귀로 꽂아주는 누군가의 용기와 투명함에 마음의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늘은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잠을 잘 자는 것을 안정감이라고 부른다. 안정감을 남은 올해 내내, 그리고 계속 느끼고 싶다. 불안감 없이 잠을 푹 자고 싶다. 평소에도 나무벤치에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조금 덜 느끼고 싶다.